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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충북일보와 20년 동고동락 최영환 영동지사장

"충북인 자긍심 지키는 언론으로 자리매김"
지역 사회 위해 40대에 신문업 입문
'마음 먹었으면 하자' 인생 철학으로 구독 부수 확장 등 애로사항 극복

  • 웹출고시간2023.02.20 16:23:58
  • 최종수정2023.02.20 16:23:58

충북일보와 20년 동고동락한 최영환 영동지사장.

[충북일보] 충북일보 창간 20주년을 맞이해 남다른 감회에 젖는 사람이 있다.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오롯이 충북일보와 동고동락한 최영환 본지 영동지사장. 그는 충북일보의 산증인이다. 신문업이 바람 부는 광야를 외롭게 걸어가야 하는 길과 같지만, 꿋꿋하게 쉬지 않고 충북일보와 함께 20년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런 그의 땀과 열정은 충북일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는 지인의 권유로 충북일보와 인연을 맺었다. 영동에서 건설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여서 가족과 직원들을 위해 뛰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때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평소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 지사장은 지인의 형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은 기억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인데다, 언론에 관해 아는 게 없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충북일보라는 제호가 참 좋았고,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최 지사장이 신문에 발을 디딘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40대 중반의 나이. 사실 그는 지역과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했다. 그런 그에게 충북일보가 다가왔고, 새로운 이 신문이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충북일보 영동지사의 식구들. 왼쪽부터 유순희 과장, 김기준 본부장, 최영환 지사장, 손근방 전 본부장.

마음을 결정하고 신문업에 뛰어들었으나, 신문 초보인 그에게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사무실은 건설회사에 여유분이 있어 어렵지 않게 마련했다. 하지만 배달해야 할 사람도 구해야 했고, 사무실 운영을 맡을 경리직원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신문을 확장하는 일이었다.

"구독자가 있어야 지사 운영에 적자를 면할 수 있고, 보는 사람이 많아야 언론의 기능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문사를 운영한다고 하니 소문을 듣고 먼저 구독해주는 고마운 지인들도 있었지만, 한 부 늘리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사실 지역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보지 않고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그로선 신문 한 부 봐달라는 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먹고살 만한 사람이 왜 신문을 하려고 하느냐는 소리도 들었고, 전화하면 받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럴수록 그는 더 용기를 냈다.

'마음을 먹었으면 하자'는 게 그의 인생 좌우명이다. 하지 않을 일이면 애초 시작부터 하지 않는 성격이다. 마음먹고 시작했으니, 달릴 수밖에. 다만 조용히, 천천히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예나 지금이나 신문업은 배달하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수소문 끝에 성실하다고 지역에서 소문난 한 주민을 만났다. 지금까지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충북일보를 배달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 오정배 씨다. 오 씨에게 "힘들겠지만, 지역을 위해 함께 일해 보자"고 했다. 다행히 오 씨도 승낙했다. 오 씨의 합류로 지사 운영에 틀을 갖췄다.

최 지사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건설업을 시작했다. 특유의 인내심으로 기다리고, 남을 배려하는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인연과 의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일에서는 거침이 없다. 그의 인생철학처럼 안 할 것 같으면 마음먹지 않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하는 사람이다. 충북일보와도, 오 씨와도 변함없이 20년 인연을 잇고 있는 배경에 이런 최 지사장의 인생철학이 깔려있다.

"익숙하지 않으면 힘이 듭니다. 그 힘든 일을 이겨내기 위해선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 합니다. 충북일보 지사를 운영하면서 초창기 많이 힘들었지만, 건설업을 시작할 때처럼 스스로 최면을 걸어가며 부수를 늘려갔습니다"

이때쯤 영동지사에 또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나 최 지사장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손근방 본지 전 남부본부장이다. 손 전 본부장은 영동에 많은 지인이 있고, 지역 문제에도 해박한 기자다. 그런 기자가 부임했으니, 절대 다른 언론사에 밀리지 않는 진용을 구축하게 된 셈이다.

손 전 본부장의 합류로 영동지사는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손 전 본부장은 정확한 판단력을 토대로 과감하게 기사를 써 내려갔고, 최 지사장과 오 씨는 발로 뛰었다. 이렇게 손 전 본부장과도 20여 년을 함께 했다. 역시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가는 최 지사장의 스타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충북일보는 영동 주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아픔을 보듬고, 지역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는 언론으로 자리를 넓혀갔다.

최 지사장은 건설업을 하면서 공무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살았다. 지사장을 맡고 있으니 기자가 취재하고 나면 지사장에게 기사 무마를 부탁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는 이런 일로 취재기자나 공무원에게 봐달라는 소리를 한 적도 없다.
"제가 나서거나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에게 부탁하는 사람에게 아주 미안했죠. 하지만 그런 부분에 관여하면 기자가 어떻게 기사를 쓸 수 있고, 어떻게 올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게 그의 언론 철학이다. 그는 취재기자를 뒤에서 조용히 지원하는 게 지사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요즘 건설업에서 손을 뗀 상태다. 회사는 아들이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유독 충북일보와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또 지역신문인 중부신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본지에서 정년 퇴임한 손 전 본부장이 이곳에서 일한다. 자신과 20여 년을 함께한 손 전 본부장과 인연을 이렇게 또 수놓고 있다.

그는 영동군 씨름협회장, 영동군 육상경기연맹 부회장, 충북 보디빌딩협회 이사 등을 맡아 충북과 영동의 체육발전에도 남다른 흔적을 남겼다.

요즘은 주로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영동군 양산면 수두리 밭에 조그만 거처를 마련해 놓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길 잃은 고양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주다 보니, 이젠 이 녀석들이 종일 저를 기다려서 하루라도 가보지 않을 수 없어요. 봄 여름엔 고양이 밥을 주고 나면, 풀 뽑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고, 풀이 보이지 않는 요즘엔 금강을 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합니다"

그에게 "충북일보에 해줄 말이 있느냐"고 묻자 "그냥 잘 됐으면 좋겠다"라고만 했다. 그는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의 이 짧은 말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어렵더라도 이겨내고, 이겨내겠다는 이유로 정도를 벗어나지 말고, 충북인의 자긍심을 지키는 언론으로 탄탄하게 나아가라는 뜻이다.

그는 자기 삶과 생각에 관해서도 나지막하게 말했다.

"돌이켜 보면 미안한 사람도 많다. 도와주지 못했던 사람, 잘 되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최 지사장도 어느새 60대 중반이다. 아쉬움과 평화, 용서와 화해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충북일보와 20년이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물 무렵 고즈넉한 금강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에게 연륜의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영동 / 김기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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