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조인숙

상당초등학교장

하루, 하루, 모든 것들이 변해간다. 사건들이 일어나고, 잦아들고, 다시 새날이 일어나고……. 일상이 된다. 토막~토막~ 기억의 봇짐들이 커지고 깊어지는 무게감도 생겨난다. 기억이 오늘의 나를 탄생시키는 것인지, 오늘의 내가 기억의 나를 품어가는 것인지. 나는 둘이 되어 기억의 토막을, 오늘의 일상을 조금은 타인의 일처럼 나누는 시간을 나눈다. 삶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 하나, 운동장 동쪽 담벼락에는 동화 속 바다가 벽화로 산뜻하다. 그 앞에는 30살쯤 되었을 청년의 느티나무가 나란히 줄지어 산다. 나는 교실에서 창문을 사이로 그들과 하루를 마주한다. 남쪽으로 해가 높게 솟을 때면 그들은 운동장 바닥에 닻을 내린다. 그들 속으로 아이들이 찾아들면 그들은 커다란 풍경이 된다. 아이들 세상으로 살아난다. 서녘 햇살이 길어지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오후, 나무는 조용히 모습을 담벼락에 담는다. 담벼락은 거울이 된다. 오늘 어떻게 살았는지, 얼마나 자랐는지 그들만의 마무리와 고독이 시작된다. 날마다 똑같은 모습인 듯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10월의 오늘, 새삼 변해감이 보인다. 햇살을 가장 처음으로, 온 잎 가득 뜨겁게 받는 가장자리부터 녹색이 아닌 색깔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속으로 길을 내고, 끊임없는 교감을 엮어내는 바람 소리도 어제와 다르다. 낙엽의 사각임이 배어 있다. '벌써 가을, 봄부터 무엇을 했나? 무엇을 해야 하나?' 그들은 또 나의 거울이 된다. 그런데 그곳에 나와 그들만 있었을까?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일상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서 현시대의 아름다운 풍속화를 그리며 공존하는 존재들이다.

이야기 둘, 조리사님이 정년 퇴임으로 학교를 떠나는 날이다. 18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셨다. 초등학교 입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남는 묵묵한 세월이다.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나? 서로의 아이디어를 모아 가시는 길을 간소하게 배웅하기로 했다. 코로나 19가 또 통제 조건이 되었다. 조리사님에 석별의 말씀, 말을 잘못한다고 하시면서 수줍게 인사말을 남기셨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 듯이 놀다 떠납니다." 쿵! 감동의 충격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우리도 언젠가 내 직장을 떠날 때 정말 이렇게 떠날 수 있을까? 가신지 한 달, 고마움이 새록새록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민다. 3월 급식을 할 수 없을 때, 학교 곳곳의 묵은 때를 벗겨 주셨다. 조리사님들의 손길이 지나간 곳은 '정말, 누가 봐도 참 깨끗하다!' 감탄이다. 덕분에 우리는 아주 환한 중앙 현관을 오늘도 오가고 있다. 발길을 멈출 때면 감사함이 오늘 일처럼 떠오른다. 아쉬움이 하나 더 있다. 전체 직원이 대면하는 송별회는 못 하지만 마지막 퇴근길 모두 같이 배웅하고 싶었는데 "평상시처럼 조용히 혼자 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보내드렸다. 그러나 그 채취만은 남아있다. 흔적은 말한다. 누가 여기에 머물렀는지. 흔적에는 마음이 담기기 때문이다.

이야기 셋, 출근길이다. 방서동 아파트 입구 신호등에 걸렸다. 신호체계에 의하여 늘 멈추게 되는 장소다. 3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등굣길, 출근길의 풍경이 다채롭다. 혼자 목적지를 향하여 곧장 걷는 아이, 둘 셋 친구임을 알리며 가는 아이, 횡단보도 앞까지 오셔서 손 흔들며 기대감으로 아이를 보내는 부모님까지 분주한 자동차를 넘어 사람들은 정겹고, 다양하다. 오늘은 보슬비가 내린다. 아파트로 들어서는 4차선에 택시가 선다. 문이 열린다. 목발을 집고, 등에 가방을 메신 신사분이 내리신다. 놀라움이 이어진다. 한 발로 횡단보도에 쓰러져있는 주차금지 세움기둥을 세우시려 씨름을 하신다. 환자가 아니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저 일을……. 그래도 성공! 그분의 눈에 왜 그것이 보였을까· 우리에겐 각자의 시선이 있다. 그분도 시선이 행동을 불렀으리라. 아마도 학부모님이 아니셨을까? 그 아파트에 마음이 간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