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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그 물길 위의 인문학 - 비숍의 남한강 소강

1894년 마포서 승선…당시 통역자 청주 양관 세운 민노아
당시 초인플레이션 현상…현금 옮기는데 6명 인부+말1필
최대 난제 여울 통과하기…그럼에도 日 70여대 배로 붐벼
강촌마을 장승과 성황당에 깊은 관심… 따스한 시선 보내

  • 웹출고시간2015.08.03 16:06:10
  • 최종수정2015.08.06 10:52:39

이사벨라 버드 비숍

[충북일보] 오늘부터 '남한강, 그 물길 위의 인문학'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총 10회로, 그 첫번째 주제는 '비숍의 남한강 소강(溯江)' 이다.

영국 잉글랜드 출신의 여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1831-1904)은 구한말 한반도를 여행한 후, 당시의 기억을 바탕으로 1897년 영국에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을 출간했다.

출간 당시 영국 출판계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이 책에는 19세기 조선의 풍물, 종교, 기생, 민요, 서민 생활 등에 대한 내용이 수록돼 있다. 특히 남한강 소강(거슬러 올라가기)과 하강(下江) 부분에는 우리고장 충주~단양 수계의 강촌(江村) 생활상이 정감있으면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비숍은 1894년 4월 14일 한강 마포나루(추정) 쯤에서 승선했다. 그 배에서는 통역자 밀러(F.S. Miller)와 선주인 '늙인 김씨', 그리고 김씨가 고용한 조선인 외에 나머지 2명 등이 동행했다.

비숍은 한달에 30달러를 주고 마포의 거룻배를 임대했다.

비숍은 배 1척과 3명을 고용하는 조건으로 선주 김씨에게 한 달에 임대료 30달러를 계약했다. 그러나 김씨는 1명만 고용하기로 하고 얼버무렸다. 그는 "한 시간 동안 노를 저은 다음에는 배를 세우고 담배를 피웠으며, 때때로 쌀을 사러 나가서 반나절을 보내기도 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비숍과 충북과의 인연은 승선 직전부터 시작됐다. 통역자 밀러는 1872년 12월에 내한하여 모펫(S.A. Moffett) 목사의 후임으로 예수교학당(현재의 경신) 학교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연못골(蓮洞) 교회의 기초를 세웠다.

그후 그는 청주지역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별세해, 현재 탑동 양관에 영면해 있다. 바로 우리 귀에 익숙한 청주 탑동 양관의 건립자인 민노아(閔老雅) 선교사이다.

배의 종류는 돛이 없는 작은 배인 거룻배로, 크기는 전장(앞뒤) 28피트(약 8.5m), 가장 넓은 부분은 좌우가 4피트 10인치였다. 비숍이 승선 직전에 고민한 것은 현금 운반이었다.

구한말은 고종정부의 통화정책 실패로 원납전(1865년), 당백전(1866년)에 이어 당오전(1883-1894년)이 남발되는 등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현상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비숍의 남한강 여행에는 고용된 조선인도 동행했다.

서구에서의 초인플레이션은 1차대전 후 독일에서 나타나, 조금 과장하면 빵 1조각을 사기위해 손수레 가득히 화폐를 가져와야 할 정도였다. 비숍의 남한강 여행 시기에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1달러는 3,200냥에 해당되었는데, 이 동전들은 새끼줄 몇 개씩 묶어 그것을 계산하고(…) 100엔이나 10파운드를 현금으로 운반하는 데 6명의 인부와 1필의 조랑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 내가 여행 초반에 사용했던 배는 현금(동전)으로 바닥을 깔게 되었고…."-<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신복룡 역·74-76쪽>

비숍이 임대한 거룻배는 본래 지붕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반도 봄날의 일사량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풀잎으로 지붕을 만들도록 했으나 이내 지붕이 날라가 버렸다.

"나의 요구로 설치된 지붕은 가관이었다. 가느다란 마룻대와 몇 개의 막대를 위태롭게 묶고, 그 위에 긴 풀잎이 밖으로 늘어져 뱃전까지 닿은 꿩풀로 댄 거적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한 바람이 두세 번 불자 이 지붕은 우리 머리 위로 떨어져 버렸다."-<〃·78쪽>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비숍의 거룻배를 가장 난감하게 만든 자연 지형은 여울이었다. 얕고 강한 물살이 흐르는 여울은 거룻배의 통과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여울을 통과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충주 막희락탄 여울 모습

"어떤 때는 하루에 7마일(약 11.2㎞) 밖에 가지 못했으며 어떤 때에는 몇 야드를 올라가는 데에도 2시간 씩이나 걸렸다. 그럴 때면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하여 배 안에서 장대로 밀고 세 사람은 온 힘을 다하여 강가로 배를 끌었다. 밧줄이 끊어졌고 배가 돌면서 빠르게 급류 밑까지 떠내려갔으며 배와 승객 및 장비에 파손을 입혔고 때로는 제멋대로 떠내려가기도 했다."-<〃·9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강은 크고 작은 배들로 항상 붐볐다. 비숍은 △10일 동안 보통 하루에 75대의 나룻배가 오르내렸고, △다리는 하나도 없었지만 정부가 제공한 47개의 무료 나룻배가 남한강에 왕래하고 있었다(83쪽)고 기술했다.

그런 남한강은 경부선 철도(1905년)가 등장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남한의 교통 대동맥 구실을 하고 있었다.

"여러 장애와 난관에도 불구하고 (남)한강은 경기도와 강원도 그리고 충청도 북부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동맥의 구실을 하였다. 강을 따라 이 지방의 중요한 특산물들이 서울로 운송되었고 거의 모든 생활 필수품, 소금, 그리고 외래 물품 등이 보부상을 통해서 항구로부터 운송되어 중요한 지점이 있는 내륙 시장에 전달되었다."-<〃>

비숍은 지리학자 출신답게 지도를 손수 그렸다. 하단에 충주, 청풍, 단양 등의 영문 표기가 보인다.

영국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안 비숍은 조선의 종교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장승과 성황당 문화를 깊히 관찰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수호신에게 소원을 비는 돌무더기가 있었다. 끝이 뭉툭하게 절단된 커다란 장승은 연약한 인간의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검정색과 푸른색으로 칠해진 장승의 주위에는 신본의 신도처럼 볏짚으로 엮어진 새끼줄이 걸려 있었고 가지에는 많은 천조각과 떨어진 짚신들이 걸려 있었다."-<〃·84쪽>

비숍은 여울을 제외하고 한국의 날씨에 대해 "4-5월 동안 기온은 42°F에서 72°F까지 변화한다. 기압은 변함이 없었고 대체로 날씨는 좋았으며 대기는 맑고 건조했다"라고 서술할 정도로 매우 만족해 했다.

대략 화씨 42도는 섭씨 5도, 72도는 22도 정도가 된다. 그녀의 배는 남한강을 따라 충주 내륙 방향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갔다.

/ 조혁연 대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비숍이 본 구한말 정세

비숍은 청일 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나 조선을 방문하여 11개월에 걸쳐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 지방을 직접 찾아가는 현지 조사를 했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이 당시의 기록이다. 이 책의 머리글에서 그녀는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가 여행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청일 전쟁 동안 한국의 운명들을 깨달으며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보았을 때 나는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을 크게 뜨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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