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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4.29 20:44:43
  • 최종수정2014.04.24 14:48:37
큰 맘 먹고 떠난 제주여행이 처음부터 삐꺽거렸다. 이틀 내내 비가 내리니 난감했다. 마음껏 오감을 열고 봄의 제주도를 느끼고 싶었던 열망이 한탄으로 바뀌었다. 성산일출봉을 거쳐 우도를 경유하며 봄의 절정을 거닐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차량이 비자림을 지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외쳤다.

"아, 고사리나 꺾으러 가자!"

◇4월의 고사리 장마


제주의 들녘 머리 위 봄꽃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피고난 후, 제주도의 봄은 비로소 땅에서 솟는다. 청정 제주에서 자란 새카만 고사리들이 4월 장마를 겪은 뒤 쑥쑥 올라와 있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김동민(탑동, 45)씨는 "이곳 제주도민들은 새벽부터 고사리 꺾기를 하다 보면 금세 낮이 되고, 가져간 배낭에는 고사리가 가득 찬다. 이렇게 꺾어온 고사리는 집 마당에서 말린 뒤 포장해서 일부는 반찬용이나 제사 때 쓰고, 일부는 시내에 살고 있는 자식들 집에 보낸다."라고 말한다. 4월의 제주 들녘에는 고사리가 지천이다. 안개가 끼거나 흐리고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이 많은 4월의 제주 날씨를 흔히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비를 맞으면 고사리가 쑥쑥 자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윤기가 없고 퍽퍽한 질감의 중국산 고사리와는 달리, 제주의 고사리는 실한 줄기에 맛과 향도 좋아 식객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인기메뉴다. 덕분에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까지 도로변에 버스를 세워놓고 들판이나 수풀 안에서 고사리 꺾기에 열중하는 모습은 4월 제주 들판의 흔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제주 먹고사리는 선채로는 결코 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미 자란 고사리들이 작은 숲을 이뤄 정작 식용이 가능한 연한 새순은 눈에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몸을 한껏 낮춰 쪼그리고 앉으면 비로소 보이는 뽀얀 고사리다. 세상의 이치가 이런 작은 행위에도 존재한다. 고사리의 품질은 고사리 순을 꺾을 때의 감촉으로 판단할 수 있다. 경쾌한 느낌으로 꺾이면 싱싱한 고사리인 것이다. '똑똑' 꺾이는 소리가 귀가 아닌 마음으로 울린다. 어느 정도 자란 고사리는 질겨 잘 꺾이지 않는다. 인생사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이듯, 하찮은 고사리 꺾기 하나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고사리가 어느새 가득 차오를 무렵,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들판에 남은 고사리를 바라보며 일행은 아쉬움을 달랬다.

◇셰프라인 월드

세계최대 주방기구 박물관인 셰프라인 공원

우중(雨中)에 할 수 있는 여행은 분명 제한적이다. 하지만 비가 오기 때문에 방문한 여행코스는 의외의 숨은 맛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작년 5월 개장한 셰프라인 월드(064-751-8500)다. 세계 최대 규모의 주방기구 박물관인 '셰프라인 월드'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일대 10만2609㎡의 부지에 건축연면적 4268㎡ 규모로 조성됐다. 세프라인 월드는 박물관을 비롯해 자이언트 토끼, 꽃사슴, 미니 말 등 애완동물을 직접 만지고 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동물농장과 제주의 창조신인 설문대 할망과 오백장군의 설화를 주제로 꾸민 설화동산도 볼 만하다. 커다란 정원에 각종 주방 용기를 마치 조각품처럼 전시해 놓으니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또한 한라산, 당 오름, 세미 오름, 바농 오름, 높은 오름 등 주변의 산과 오름을 조망할 수 있는 한라산 모양의 오름 관찰장과 수생식물원도 눈길을 당겼다. 비바람 치고, 억수같이 비 내리는 날씨에도 우산을 쓰며 한 바퀴 둘러보는 맛이 색다르다.


특히 이번 셰프라인 월드 투어에서는 라스베거스의 자랑이라고 일컫는 마술사 릭 토마스 쇼를 만날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었다. 지척에서 호랑이가 순식간에 등장하는가 하면 어느새 홀연히 삽시간에 사라져 자꾸 눈을 비벼야만 했다. 꿈을 꾼 듯 신기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술쇼는 5월 말까지만 계약이 되어 있다. 공연시간은 9시30분, 11시, 2시 총 3회 공연한다.

◇선녀와 나무꾼

선녀와 나무꾼 입구

2008년 6월 문을 연 '선녀와 나무꾼(064-784-9001)'은 비오는 날 가면 오히려 운치가 있다. 우리나라의 1950~1980년대와 관련된 추억들을 통째로 모아 놓아 옛 기억들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입구의 서울역 모형을 통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흑백사진으로 만나는 '서울역과 추억의 사진관', 남북 분단을 나타내는 지도를 전시한 지도관, 옛날 장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그 옛날 장터' 등이 관심을 끌었다.


특히 과거 극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영화관에 발을 들여놓으면 묘한 감흥에 빠지게 된다. 어두컴컴한 영사실에서 구식영사기가 돌아가고 흑백필름의 긁힌 자국들이 오히려 친근해진 영화를 만난다. 길거리 매장에서 만난 잡지 '선데이 서울', 교복을 입은 남녀학생들이 빵을 시켜놓고 데이트를 즐기는 제과점 창문 안의 모습, 울릉도 호박엿을 사러 고무신을 건네는 아이와 엿 장수의 모습 등이 정겨운 미소를 품게 한다. 또한 과거 도심에 들어섰던 여러 상가를 재현한 도심의 상가 거리, 추억 속의 정든 학교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추억의 학교 모습, 과거의 다양한 풍속을 주제별로 나누어 보여주는 닥종이 인형관이 꽤 인상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사용했던 농기구와 농업 관련 생활용품을 전시하는 농업박물관, 각종 민속 생활용품을 전시한 민속박물관, 조선시대 궁중 자수와 민간 자수, 십자수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자수박물관, 지난 시절 유행했던 추억놀이 체험관 등이 있다.

◇인형들의 왕국 '테지움'

테디베어 박물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곰 인형에 대한 환상을 가져봤을 것이다. 그런 모든 아이들의 꿈을 담아 탄생한 것이 바로 제주특별자치도 중문 관광단지에 위치한 테디베어 박물관이다.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의상은 물론 명화, 드라마 속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테디베어의 모습들은 그야말로 곰 인형의 왕국이다. 2008년에는 야심찬 기획의 하나로 기존의 테디베어 박물관과는 달리 직접 만져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오픈 형 박물관인 '테지움(064-799-4820)'이 개관되었다.


갤러리 존과 사파리 존으로 나눠져 있어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보고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사파리 존은 세계 최초로 실제 동물의 크기로 제작된 봉제인형을 전시하고 있다. 호랑이, 코끼리, 사자, 돌고래, 상어 등 야생이나 수중동물들이 인형으로 만들어져 아이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드라마 '뉴 하트'에 등장했던 테디베어나 그리스 신화와 명화, 사진을 패러디한 테디베어를 주인공화한 전시물들은 갤러리 존에 전시되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제주도의 명물에서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는 테지움 사파리는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155-112번지 세계 최대 규모의 나비공원인 '프시케월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잡으면 팔고, 못 잡으면 안파는 '엄마손 횟집'

자연산 도미와 우럭

제주 풍경에 미련이 남아 아쉬운 저녁이다. 하지만 비 내리는 낯선 여행지에서 지인들과 기울이는 소주 한 잔은 그 무엇보다 편안하고 자유롭다. 더구나 술안주로 쉽게 맛볼 수 없는 오리지널 자연산 횟감을 만난다면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우연히 횟집 문을 열었는데 의외의 대박이다. 엄마손 횟집(064-747-0317)이다. 이곳은 자신이 잡은 고기만 파는 곳이다. 작고 아담한 규모지만, 횟집 풍경은 서두름이 없다. 고기를 잡으면 팔고, 없으면 안 판다. 참으로 간단한 논리다. 15년 동안 낚시 배를 갖고 물고기를 잡았지만, 못 잡는 날은 그냥 노래하고 춤춘다.

노래하는 주인장 이태수씨.

KBS 인간극장 '그 사나이 이태수'에 출연해 이미 유명인사가 된 그였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는 곳이지만, 운이 좋은 탓인지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 그날 잡은 우럭과 도미를 먹을 수 있었다. 낚시로 고기를 잡기 때문인지 상차림은 단출하다. 일명 그 흔한 '스끼다시' 해물 하나 볼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갔다. 하지만 통째로 잡아 내온 회를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뱃사람 칼질답게 예리하면서 두툼하다. 제주 한라산 소주(21도)를 툭 털어 넣고, 회 한 점 베어 무니 입에 착착 달라붙는 쫀득한 식감이 남다르다. 육향이 입안에 달콤하게 감돌 때,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넘실거린다. 주인장 이태수가 부르는 구성진 노래다. 손님이 있든 없든 아랑곳없다. 김정호의 노래 '하얀 나비'가 구성지게 밤바다로 날개 짓을 한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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