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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8코스

제주도 서귀포시 근처 올레 8코스를 걷다 보니 인근에 바로 강정마을이 있었다. 거대한 펜스로 가려진 앞바다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주변엔 여러 가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들이 봄바람 아래 흔들리고, 강정천 옆 풀밭에는 시위하는 사람들의 숙소인 듯 텐트가 쳐져 있었다. 강정천과 악근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 끝에 앉아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차 안에서 일행 중의 한 사람과 제주도 토박이 가이드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강정마을 꼭 가봐야죠. 평화의 상징 같은 곳인데……"

"평화? 그것도 웃기는 소리예요. 제주만 평화가 있나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예요. 여기 사람들도 서로 갈등을 겪을 때도 많고. 저 보고도 집안 어른들이 '육지것들'하고 어울린다고 별로 안 좋아하세요. 여기에 해군기지 건설하는 사람들도 외지 사람이고, 거기대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외지 사람이고."

가이드는 퍽 냉소적이었지만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제주 4·3사건 등 참람한 아픔을 겪었던 그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외지인들이 제주 사람에게 고통만 준 것은 아니었다.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그들의 예술혼을 남김없이 불살랐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어 제주는 더욱 빛나는 이름이 되었다.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착잡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그림과 사진으로 제주를 유난히 사랑했던 육지 사내들을 만나러 갔다.

높고 쓸쓸히 그리움으로 그림을 완성한 사람, 이중섭

이중섭 거주지.

"나에겐 좋은 집도 없어요. 땅 한 조각 없구요. 그러나 당신께 산과 들을 깨우는 아침을 보여드릴 수 있고, 입맞춤과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릴 수 있답니다."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라는 제목의 외국곡이다. 노래의 내용은 마치 생전의 중섭이 아내를 향해 가졌던 마음과도 흡사하다. 이중섭미술관 앞뜰은 수선화, 벚꽃, 홍매화, 유채, 동백 등이 햇볕 아래 난만하여 황홀했다. 특히 황금빛 수선화는 아내를 유난히 귀애했던, 가난했으나 사랑으로 충만했던 중섭의 영혼처럼 만개했다. 미술관 앞 생전의 이중섭이 거처했던 곳은 그야말로 손바닥 같은 방이었다. 네 식구가 눕기에도 너무 좁았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이중섭이 소 그림에 붙인 '소의 말'이란 시이다. 같은 평안도 출신이며 동시대를 살았던 시인 백석의 시와도 비슷하다.

이중섭 동상.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애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의 시처럼 중섭은 가난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았다. 궁핍했던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표현 가능한 매체에 그림을 그렸다. 답배갑에 그려진 은지화, 엽서 그림, 장판지 위의 그림 등 경제적 고난이 그의 그림 세계를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발전시켰다. 헤어진 가족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과 결핍된 삶은 역설적으로 그의 예술을 고양시키고 승화시켰던 것이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서귀포의 환상' 등 제주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많이 남겼다.

"나의 최대(最大), 최미(最美), 최애(最愛)하는 아스파라거스군"

이중섭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아내의 발가락이 유난히 예뻐 발 모양을 닮은 아스파라거스라는 애칭으로 아내를 불렀던 그는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과 편지로 대신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이었건만 1953년 일본에 가서 잠깐 가족과 재회한 후, 전쟁 중인 한국으로 금방 되돌아왔다. 그것은 그의 조국에 대한 지사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것이 가족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현재 이중섭미술관 옆은 창작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어 화가의 길을 걷는 그의 후배들에게 예술적 안식처 노릇을 하고 있다.

필름에 삶을 인화한 사람, 김영갑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때로 어떤 이는 인생을 살다 가는 것이 아니라 '불태우고' 간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그것을 알았다. 갤러리의 뜰은 낮게 어깨 겯은 나무들과 작은 토우들로 가득했고, 안에는 제주의 오름과 들녘이 펼쳐지며 푸른 바다로 넘실댔다. 특히 중산간 지역의 오름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의 시선들이 포착한 오름의 풍경들은 정말이지 이 땅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무한 언어였다. 루게릭이라는 불치병이 그의 육신을 밀물처럼 야금야금 엄습해 들어올 때까지 그는 자연의 정물인 양 제주의 정수를 카메라로 채광(採鑛)했다.

김영갑 갤러리 전경.

"바람이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삽시간의 황홀을 선물하는 제주의 혼을 카메라에 가두려고 그는 정한 장소에 나가 앉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의 변화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안겨드는 제주의 바람과 구름이 비로소 사람의 것이 되었다."

정희성 시인의 헌사다. 손이 떨려 더 이상 셔터를 누를 수 없을 때까지 그는 제주 자연의 일부로 살았다. 2005년 5월 그가 48세로 타계했고, 그의 육신은 갤러리 앞 감나무 밑에 뿌려졌다.

"제주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평화가 있어요."

갤러리 안 영상 속에서 생전의 그가 굳어가는 혀로 어눌하게 입에 올리는 그의 '평화'가 그대로 가슴에 스며들었다. 앞서 누군가 말했던 '제주의 평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구호로 남용되는 평화와 20년 이상 제주의 표정을 직접 지켜본 이가 말하는 평화는 질적으로 달랐다.

김영갑 갤러리 내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본 적이 있다. 극 중 저명한 사진작가는 '삶의 정수'라 칭하는 사진을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에 실릴 표지 사진으로 보내준다. 그것은 '라이프'지의 포토 에디터로 평생을 일한 주인공이 필름지를 정성껏 들여다보는 모습이었다.

그랬다. 결국 인간이었다. 풍경과 자연 이전에 그것을 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었다. 생명이 꺼져들면서도 김영갑은 순간순간의 단상을 일지로 기록했다.

"나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생명의 순환 원리에 몸을 맡기고 대자연의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다."

그가 생전에 즐겨 카메라에 담았던 용눈이 오름에 올랐다. 그가 말했던 제주의 평화와 대자연의 메시지를 감사히 받았다. 능선을 오르다보니 이중섭의 그림 속 소들이 순하게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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