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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도 '빈익빈 부익부' - '수저의 대물림'에 속타는 부모

"출발선 자체가 다른 아이들… 안쓰러운 마음 뿐"

  • 웹출고시간2016.01.27 19:45:43
  • 최종수정2016.01.27 19:57:06

손님들이 없어 한산한 청주 시내의 한 시장에서 상인이 진열된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 성홍규기자
[충북일보] 원모(47)씨는 갑작스러운 한파에 한산해진 청주의 한 시장 골목에 서서 산처럼 쌓아 올려진 오징어젓갈만 뒤적인다.

며칠전부터 심상찮다 싶을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간간이 서성이던 손님들의 발길마저 뚝 끊겼다.

벌써 해가 지려는지 거뭇거뭇 어둠은 내려오는데 오늘 매출을 생각해보니 한숨만 나온다.

시장 옆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장씨가 낙지젓갈과 조개젓갈을 사 간 게 3만원, 옆집 사는 오씨가 새우젓갈 1만5천원어치를 샀는데 현금이 1만원 밖에 없다며 5천원은 외상을 해 갔다.

원씨는 "젓갈 장사라는 게 김장철에 새우젓갈 조금 팔리는 것 말고는 별 볼 일 없다. 그래서 반찬도 만들어 팔고 떡도 떼다 팔고 한다"며 "그래도 오늘은 4만원 벌었다. 공칠(허탕 칠) 때도 많은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각종 젓갈을 도매가로 사 오는 금액과 가게 유지비로 나가는 돈을 생각하면 '다리가 휘청일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그를 버티게 하는 건 두 아들과 아내.

원씨의 큰아들 영태(20·가명)씨는 지난해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군대에 가 있고 막내아들 준태(15·가명)군은 곧 중학교 3학년이 된다. 아내는 시장에서 함께 젓갈 장사를 하며 반찬도 만든다.

그는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에겐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부모 속 썩이지 않고 바르게 자라줘서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오징어젓갈을 뒤적이던 원씨는 손을 멈추고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2년 전 중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아들 준태군이 학교에서 가정조사 서류를 작성해 오라고 했다며 원씨 부부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원씨는 '아버지 직업·어머니 직업'란과 '가정 경제적 수준' 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아들이 부모의 직업에 창피를 느끼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원씨가 머뭇거리는 낌새를 눈치 챘는지 준태군은 "괜찮아요. '시장 젓갈 상인' 적어 줘요. 가정 형편은 '하'는 창피하니까 '중하'로 적고"라며 먼저 말을 했다.

웃으며 그 말을 하는 아들을 보며 원씨는 목이 메 아무 말도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시장 젓갈 상인'과 '중하'를 그대로 적어서 아들 손에 건네줬단다.

그는 "애들이 속이 깊다. 용돈 한 번 마음껏 못 써보고 그 흔한 최신형 스마트폰도 못 써본 애들인데 그렇게 부모 생각을 한다"며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학기 중은 물론이고 방학 중에도 변변찮은 학원 한 번 못 보냈다며 미안해 했다. 사교육·조기교육 열풍은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고 했다.

원씨는 "뉴스에서 보면 방학 때 부잣집 학생들은 고액 과외도 받고 해외 연수도 다녀온다던데, 두 아들은 형이 선생님이 되고 동생은 학생이 돼 집에서 공부를 했다"며 "학원 문턱에도 못 가 본 애들이라 비싼 돈 들여서 공부한 친구들과 어떻게 경쟁을 할까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충북도가 도내 1만1천6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월 500만원 이상인 가정의 43.6%가 고교생 자녀 1인당 사교육비로 50~100만원을 지출한다고 했다. 100만원 이상 사용하는 가정도 11.3%에 달했다.

그러나 월 소득이 199만원 이하인 가정은 44.3%가 10~30만원 지출에 머물렀으며, 23%는 10만원 이하를 지출한다고 답했다.

원씨는 "요새 흙수저다 금수저다 말들이 많은데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는 '흙수저'"라며 "출발선 자체가 다른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미안해서 말문이 막힐 따름"이라고 말했다.<끝>

/ 성홍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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