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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실종 아들 찾던 50대 父, 끝내…

'가족에게 미안하다' 유서 남기고 목숨 끊어
납치 용의자 붙잡았지만 현지 유치장서 자살

  • 웹출고시간2013.01.02 19:40:0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1일 밤 10시 청주 참사랑병원 영안실.

고인이 된 H(57)씨의 영전사진을 부둥켜안고 유가족들이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여느 상갓집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유가족 중 한사람은 정부의 안일한 자세를 비판하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고인은 이날 오전 7시40분께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용암동성당 인근 등산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한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다. 고인의 옆에는 먹다 남은 막걸리병과 농약병, '가족에게 미안하다'라는 취지의 유서가 든 가방이 놓여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H씨의 아들은 지난 2011년 9월 필리핀으로 5박6일 일정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여동생의 권유로 아들은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에게는 서울에 있는 한 무역회사에 입사한 뒤 맞은 첫 번째 휴가였다. 그러나 아들은 귀국 사흘 전 H씨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금이 필요하니 1천만원을 입금해 달라"라는 다급한 전화를 했다.

가족들은 서둘러 돈을 입금했으나 이날 오후부터 아들과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H씨의 아들이 필리핀 여행객 납치 강도단에게 납치당한 것으로 예상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H씨의 아들을 납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K(43)씨를 필리핀 비콜항구에서 체포했으나 K씨는 현지 유치장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K씨는 지난 2007년 7월 경기 안양 비산동의 한 환전소에서 공범 2명과 함께 여직원을 흉기로 살해한 뒤 현금 1억원을 빼앗아 필리핀으로 달아난 혐의도 받고 있었다.

K씨 일당은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관광객들에게 접근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속여 남치한 뒤 한국의 가족으로부터 몸값을 받아내는 등 모두 13차례 이상 납치·강도 등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C대학교 도서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고인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외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유가족들은 전했다. 경찰은 물론 해당 정부부처 등을 상대로도 수시로 문의를 했으나 허사였다.

필리핀 배낭여행을 권유한 여동생도 오빠의 실종이후 죄책감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유가족들은 "자국민이 행방불명 된지 수년이 흘렀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카지노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 등의 식으로 가족들의 도움을 외면했다"며 흐느꼈다.

H씨의 죽음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같은 상처를 입은 수많은 피해가족들의 댓글이 게재됐다.

관련 글을 게재한 청주대 A학생 페이스북에도 H씨의 죽음을 슬퍼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글과 이 글을 읽고 지지한다는 사용자들의 의견이 1만여건이 넘었다.

/백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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