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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5.17 18:12:2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1982년 3월 하순에 청주시 운천동 속칭 산직말 입구에서 오래된 비석 하나가 발견된다. 바로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 134호로 지정된 '운천동 신라사적비'다.

비(碑)는 정방형의 형태로 3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다. 화강암 재질의 비는 높이 92㎝, 너비 91㎝, 두께 15~20㎝ 등의 제원을 지녔다. 발견 당시 비는 윗부분은 절단되고 아래 부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운천동 신라사적비는 마멸이 심해 비문 내용이 완벽히 판독되지 않고 있다.

다만 비문 중에 '壽拱二年歲次丙戌'(수공이년세차병술)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壽拱'은 중국 당나라의 측천무후 시절에 사용하던 연호이다. 따라서 통일신라 신문왕 6년(686)에 세워진 사적비로 확인됐다. 따라서 문화재 명칭도 '운천동 신라사적비'다.

비문은 완전한 문장으로 해석되는 것은 거의 없으나 불교찬양, 왕덕 칭송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부 학자는 '신라 중심의 세계관도 엿보인다'고 말하고 있으나 정설의 위치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비문 판독에 대한 문제는 여기서 멈춰서 있다. 대신 이 비가 3면 비인가, 아니면 4면 비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완전히 해소되고 있지 않다. 지난 1989년에 작고한 사학자 이병도 박사는 이 비를 전후좌우 4개 면에 문자가 모두 새겨져 있는 4면비로 봤다.

그는 그 이유로 본래 입석(立石)이었고, 전면과 후면이 문장상 아무런 연속성을 갖지 않고 독립된 구절로 구성돼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비해 우리고장 보은 출신인 한학자 임창순(1999년 작고) 선생과 충북대 차용걸 교수는 3면비로 봤다.

먼저 고 임창순 선생은 "글자가 너무 커서 전면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후면까지 새긴 것으로 보이나, 그렇다고 해서 측면이 네번째 면까지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금은 이 설이 보다 "타당한 견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차 교수도 임창순 선생의 견해에 동의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마모가 심한 면. 즉 '전면' 또는 '제 2면'으로 호칭되는 면의 용도에 대해서는 보다 확장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여느 문화재처럼 운천동 신라사적비도 발견 당시의 모습이 다소 에피소드적이다. 이 비는 1982년 산직말 마을의 공동 빨래터로 사용되던 곳에서 발견됐다.

이는 이 비가 오랫동안 빨래판으로 사용됐음을 의미한다. 운천동 비에 '마멸이 심하다'라는 표현이 약방의 감초처럼 뒤따라 다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마모가 심한 면이 그냥 매끄러운 것이 아니라 요철, 즉 움푹움푹 파인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마치 도끼 자국처럼 홈이 깊은 것도 있다. 이는 비가 빨래판 외에 또 다른 용도로 사용됐음을 의미한다.

차교수는 이에 대해 "도살용 깔판이나 고춧가루를 빻던 용도로도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덧붙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지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시골마을 곳곳에 공동빨래터를 집중적으로 설치했다. 운천동 신라사적비에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다. 중세 역사에 현대 역사가 더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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