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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새해다. 사진 액자 속에 핀 눈풀꽃(Snowdrops)을 바라본다. 눈 얼음 알갱이 사이를 비집고 나와 핀 하얀 절정. 눈풀꽃은 땅속 구근에 의해 번식하는 강인한 초본 식물이다. 추운 기후에서도 대지를 뚫고 꽃을 피운다. 흰 꽃의 자태가 눈물 모양의 진주 귀걸이처럼 아름답다. 눈풀꽃은 새해와 새봄을 알리는 '희망'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 루이즈 글릭은 눈풀꽃을 보며 새 삶의 희망을 일깨운다.

당신 아나요, 내가 어땠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절망이 어떤 건지 당신은 알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겨울의 의미를 아시겠지요.

내가 살아남을 줄 몰랐어요,

대지가 나를 짓눌렀거든요. 내가 다시 깨어날 거라

예상하지 못했어요, 축축한 땅 속에서

다시 반응하는 내 몸을 느끼게 될 거라곤,

그토록 긴 시간 흐른 후에

가장 이른 봄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나를 여는 법을 기억해 내리라고는

두렵냐고요, 네, 그래도 당신들 속에서 다시

외칩니다. 그래요, 기쁨에 모험을 걸어 보자고요.

새로운 세상의 맵찬 바람 속에서.

― 루이즈 글릭(1943~2023), 미국 시인,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눈풀꽃」전문 (시집 야생붓꽃, 정은귀 번역, 2022 시공사)

이 시의 화자는 꽃이다. 시인은 '눈풀꽃'에 완전히 빙의하여 시를 빚는다. 강한 식물의 유전적 특질을 시로 가져와 자기 내부의 세계를 읽고 노래한다. 화자는 하나의 식물과 같이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이지만 겨울의 죽음을 뚫고 꽃을 피우는 생명을 몸 안에 가지고 있다. 식물의 본능은 자연에 반응하는 부드럽고 강한 힘의 굴절과 표상을 인간에게 가르쳐준다. 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긍정의 빛이다. 참혹하고 끈질긴 인내의 뼈에 새겨진 빛 말이다. 겨울의 딱딱한 흙 속에서 오랜 시간 참다가 기어이 죽음을 뚫고 나오는 생명의 빛! 그건 세계를 둘러싼 암흑을 뚫고 대지 위에 자신의 생명을 밀어 올리는 에네르기다. 고통에서 깨어나는 행위는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하며 암흑 속에서 몸을 뻗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세계를 여는 가장 어렵고 긍정적인 방법, 그러니까 인내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때 다시 만나는 세상은 얼마나 새로운가. 죽음을 뿌리친 도약의 순간은.

누군가 지금 그러한 순간에 있을 것이다. 강철보다 견고한 겨울의 바닥에 묻혀 싹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 당신과 내가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 어디쯤 남아있는 생명의 뿌리를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긴 동면과 두려움의 끝에, '세상의 맵찬 바람 속에서' 그 뿌리를 껴안고 소리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화자는 '기쁨에 모험을 걸어 보자고' 청유한다. 정적인 존재는 빛나지 않는다. 존재는 고통에 대항하며 일어섰을 때 빛나고 꿈을 버리지 않을 때 제 싹을 피운다. 굳어버린 겨울 황무지에도 치유의 싹은 다시 올라온다. 그리하여 연약한 뿌리와 줄기가 뭉쳐 단단한 바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푸른 잎과 꽃을 피운다. 시인이 꿈꾸는 삶은 '어둠에서 깬 기쁨으로 충만한 삶' 아닌가.

2024년 새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상심과 고통의 뿌리를 가진 세계의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부드러운 치유와 하얀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기원한다. 눈을 뜨고 몸을 뻗어보라. 얼음을 뚫고 무수한 눈풀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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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IVA 콘서트' 김소현·홍지민·소냐 인터뷰

[충북일보] 이들은 이번 공연을 앞두고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서 서로 친하다. 서로 무대에서 만난 지 오래됐는데 이번 콘서트 덕분에 만나니 반갑다"며 "셋이 모이면 생기는 에너지가 큰데 이를 온전히 관객들께 전해드리고 싶다"고 이번 공연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홍지민은 "사실 리허설 등 무대 뒤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하다. 셋이 만나면 서로 칭찬하기 바쁘다"며 "긍정적인 분위기, 행복한 에너지는 전파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사이가 좋다 보니 무대에서도 합을 더 잘 맞출 수 있다"고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어 김소현은 최근 일본 공연, 새 뮤지컬 합류 등으로 바쁜 일정에 공연 준비까지 소화해내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에 선다. 맡은 배역이 위대한 인물이고 처음 도전하는 캐릭터라 연기를 하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하지만 공연 준비부터 실제 무대까지 모든 일이 정말 행복하고 즐겁다. 일 자체를 즐기니 힘든 것도 잊고 일정을 병행하고 있다"고 답하면서 "이번 공연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기대된다. 공연을 보러오시는 모든 관객께도 지금의 행복을 가득 담아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겠다"고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