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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12.26 14:52:08
  • 최종수정2021.12.26 14:52:08

김정범

시인

"지금 너무 어렵죠"

전화를 끊었지만, 지인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속에서 날카롭게 울린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바이러스는 몸을 바꾸며 여전히 세상을 돌아다닌다. 어떤 이에게는 너무 힘든 겨울이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아직 얼어 죽지 않은 가을꽃 위에 눈이 쌓인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시집을 펴든다. 하얀 시집 속에 몇 송이 꽃이 피어있다.

나는

에델바이스를 본 적이 있다.

겨울에도 피는 이 꽃

눈 덮인 깊은 산속, 꽁꽁 얼어붙은 땅을 열고 찬란히 숨결을 터뜨리는

이 꽃,

본 적이 있다. 지하도에서

콘크리트 무게로 무겁게 짓눌러오는

내 울음

이 동토에 삽을 꽂고 뜨겁게 땀을 흘릴 때.

한 번 손을 내밀 때마다 한 삽씩 퍼 올려지던

어둠,

온몸의 질통에 담아 나르던 꿈의 뿌리

그 삽질,

기어이 그대 가슴 덮인 콘크리트 벽을 뚫고

흙의

따뜻한 살결을 만났을 때,

몸의

모든 뼈, 그물 엮어 피워 올리던 그 꽃,

빛과 모양은 잊었지만

나는 에델바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에델바이스를 본 적이 있다」 전문, 김신용

시는 삶의 어느 정점에 선 인간과 꽃의 모습을 표현한다. '질통'이란 어휘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오래전에 쓴 시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 질통은 모래나 자갈 등의 자재를 등에 지고 나르던 주요한 도구였다. 그 힘겨운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시인은 시를 썼다. 흰 눈과 땀과 눈물이 뒤섞인 이 시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꽁꽁 얼어붙은 땅을 열고 찬란히 숨결을 터뜨리는 이 꽃' 에델바이스는 뿌리 없는 사람들이 뿌리를 박기 위하여 어떤 삶을 사는지를 상징적으로 그린다. 시인은 꽃이 언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생각하며 노동자의 '삽질'과 '온몸의 질통에 담아 나르던 꿈의 뿌리'를 노래한다. 꽃도 노동자도 자신을 피우기 위해 '몸의 모든 뼈'를 '그물'처럼 '엮어 피워 올려야' 한다. 외형적인 '빛과 모양'보다 그 사투하는 정신이 고귀하다. 시 속에는 일그러진 고통 속에서 일어서는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이 하나의 형상으로 어우러져 있다.

에델바이스는 알프스의 1천4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피는 꽃이다. 우리나라의 '솜다리'라는 꽃과 같은 종류다. 꽃잎이 하얀 솜털로 덮여 있고 한라산 설악산 등지의 고산 바위 지대에서 자란다. 실제로 보기 힘든 희귀한 꽃으로 '보호종'이다. 눈 속에서 피는 이 꽃은 '희망의 상징'이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생각난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주인공 가족들은'에델바이스'라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나치의 치하를 벗어나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탈출한다. 희망찬 7남매의 천진한 모습과 마리아 역을 했던 줄리 앤드루스의 밝은 연기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우리의 마음속에 '에델바이스' 꽃은 여전히 살아있는가. 지친 사람들에게 꽃을 보내고 싶다. 겨울에도 꽃은 핀다. 쌓이는 눈 속에서도 꽃은 핀다. 우리 마음속에 핀 꽃. 희망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아닐까. 이 밤도 누군가는 등에 질통을 진 채, 시인의 에델바이스를 가슴에 품고 눈 내리는 산을 넘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찍는 발자국마다 새로운 싹이 돋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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