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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한 대의 버스가 정차하고 다른 한 대의 버스가 그 곁을 지나갔다. 그리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정지한 버스를 덮쳤다. 아득하다. 몇 초의 순간에 많은 이의 생사가 갈렸다. 잔해에서 뿜어나오는 매캐한 먼지가 눈앞으로 휘몰아쳐 들어온다.

뉴스를 보며 터지는 안타까움을 삼킨다. 또다시 눈물 흘리며 '안전불감증, 인재'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가.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일은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렇게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비극적 사고의 원인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나태 그리고 탐욕이 숨어있다.

목줄을 조여오는 위급한 시간에도 바다는 울지 않았다

천하가 다 아는 살붙이의 목구녕이 한둘 아니란 것에도

바다는 울지 않았다.…(중략)…

애락의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수도자의 얼굴일 듯

소멸의 경계에 서 있는 생명들의 절규를 모아 모아

소성의 칼날을 벼리고 있는 바다

깊이 모를 그 바다의 어전(語典)에는 울음이란 말 없다

─「침묵의 칼날 - 태안」 부분, 안재찬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인천대교 공사를 마친 크레인 부선과 유조선이 충돌한 사고로 태안 바다는 유출된 원유로 뒤덮였다. 시커멓게 뻗어가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시인은 '소멸의 경계에 있는 생명의 절규를 모아 소성의 칼날을 벼리고 있는 바다'를 본다. 바다는 제 죽음이 모든 생물의 죽음임을 알고 있는 것일까. 검은빛에 칼날을 드러내듯 조용히 출렁이며 빛살을 번득이는 바다. 병든 바다는 자신의 몸을 훼손한 인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흔들리고 출렁이며 스스로 치유할 뿐이다. 절규와 아우성이 끝난 다음에 오는 정제된 침묵은 울분의 경계를 넘어선다. 상처는 아직 남았지만, 태안 바다는 여전히 상처 난 자신을 치유하고 있다. 울지 않는 바다의 깊은 침묵을 깨달은 시인은 또 다른 시에서 현실의 캄캄한 절벽에 부닥쳤을 때 '울지 않기'를 권유한다.

무변대공을 바라보고도 울지 마라

다만, 네 심장에

숨어있는

고요의 발원을 기억하라

─「울지마라 」부분, 안재찬

무엇으로 형언할 수 있으랴. 까마득한 고통의 시간, 사고를 당한 가족이 처한 현재 상황이리라. 그러나 시의 화자는 텅 비어버린 시공간 앞에서 울지 말 것을 청한다. 그리고 '심장에 숨어있는 고요의 발원'을 찾기를 청한다. 그것은 지나친 감정의 흔들림에 대한 이지적인 제어와 자기 극복을 의미한다. 캄캄한 어둠과 마주할 때 사람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내면의 힘이다. 그 힘이 있어야만 새로운 삶과 마주할 수 있다. 그 힘은 구도자의 몸에 각인된 정신처럼 단단하고 강한 초월적인 힘일 것이다. 건강한 정신이 살아있다면 우리는 치유와 회복의 빛을 향해 나갈 수 있다. 마치 태안 바다가 고요 속에서 스스로 치유하듯이 '침묵의 칼날'을 벼리며 슬픈 현실을 극복해야 하리라.

자연의 법칙과 원리는 스스로 균형을 깨는 법이 없다. 그 균형을 깨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나태, 탐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처절히 깨달았다면, 법과 제도와 정치는 상처받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적인 회복을 돕는 사회의 책임이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이 모두 평온하기를 바란다. 제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정교한 계획과 점검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 문화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유월의 푸른 나무가 소리 없이 고개를 숙인다. 나는 슬픔을 지우며 침묵의 커튼을 열고 들어간다. 고요의 가장 낮고 깊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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