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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확실히 봄이다. 창밖의 나뭇가지에 붉은 꽃이 피어 있다. 홍매화다. 그 옆의 목련과 개나리가 봉오리를 맺는다. 아직 꽃잎을 열기 전의 여린 모습이다. 어디서 날아왔나. 꿀벌 여러 마리가 화분과 꿀을 채집한다. 하나의 자연이 움직이는 데는 우주의 모든 힘이 관여한다. 따스한 햇볕이 쏟아져 내리고 나는 잠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표지 빛깔이 고운 시집을 편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

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 가도 사막길 같은 날

물고기가 눈을 뜬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들

마음 빼앗겨

잠시 주춤하는 사이

뼈만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오오, 저 푸른 화약내!

─ 홍해리, 「개화」 전문 (시집 홍해리는 어디 있는가, 도서출판 움 2019)

시는 꽃이 피어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시를 읽으며 나는 몇 가지 상상을 한다. 동양화 속의 풍경이다. 매화가 핀 정원에서 술잔 꽃배를 띄우던 옛 선인들의 풍속도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진다. 시는 그림 같은 평면적인 세계와 입체적인 현실의 세계를 함께 보여준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라는 첫 문장에서 자연의 신비로움과 존재의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시 화면 속에서 나무와 꽃은 정적인 듯이 보이지만, 울음은 동적인 현실의 감성을 갖게 한다. 우리의 삶이'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 가도 사막길 같은' 고난 속에 있기 때문일까. '물고기가 눈을 뜬다'라는 문장으로 화자는 개화의 한순간을 생명에 대한 인식으로 병치한다. 눈에 보이는 추녀 끝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는 화자 자신임을 암시한다. 푸른 하늘 배경을 바다 삼아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드는' 자아는 수동적인 의식이 역동적인 힘을 갖게 되었음을 뜻한다. 피어나는 꽃의 생명은 각자의 소리와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 일부로서 인간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뼈만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오오, 저 푸른 화약(花藥)내!'라는 구절은 변화와 혁신, 폭발적인 에너지와 새로운 창조의 힘을 강렬하게 나타낸다.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도 생명은 죽음의 뼈를 부수고 무수히 탄생한다. 선연하게 아름다운 마지막 구절은 죽음과 삶 사이의 간극을 부순다. 평면적인 세계와 입체적인 현실의 세계는 터지는 생명으로 융합하며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그린다. 바람이 없음에도 매화나무가 우는 모습은 생명을 피우기 위한 울음 아닌가.

매화는 가지에 꽃잎을 피운다. 잎새가 돋아나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것이 다른 꽃과 다른 점이다. 이 시는 청매화가 피는 모습을 통해 죽음의 경계에서 깨어나는 삶을 표현한다. 죽은 가지에서 화약 냄새처럼 터지는 싱싱한 푸른 향은 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일깨운다.

잠시 어지러운 일상을 벗어나 깨어나는 봄의 뜨락으로 가보라. 푸른 잎을 달고 태어나는 풀과 꽃을 바라보라.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한 생명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고 어떻게 그것을 지켜야 하는 가를 생각해보라.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을 감지하고 그 속에서 우주의 비밀을 찾아내는 건 우리와 연결된 흙과 비와 바람 그리고 태양과 관계를 다시 맺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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