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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0.29 14:47:35
  • 최종수정2023.10.29 14:47:35

김정범

시인

7월 장마에 선영이 무너져 내렸다. 일꾼들과 함께 보수작업을 함께 하며 '내 잘못이 무엇일까'하고 자책했다. 자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금 실감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시 소파에 눕는다. 문득, 책장 위의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꺼내볼까, 하다가 이기적인 마음에 그냥 두기로 한다.

누군가 천장에 대못 쾅쾅 치는 밤

쉽게 박히지 않아

쇠뭉치 끝에서 불이 튀고

두껍게 뭉쳤던 구름도 금이 가서

물이 주룩주룩 쏟아진다

더러 남은 구름이

불어온 바람에 흠실흠실 흩어지고

환한 얼굴 하나 걸린다

아버지는 내 마음 어찌 알고

엄마 사진 내걸었을까

액자 속 어룽어룽 그림자

아직도 자식 걱정하는지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통통히 여문 달빛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오실 것처럼

─ 강우현, 「보름달」전문 (시집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 우리시움, 2023)

누가 밤에 대못을 박고 있을까. 천정을 타고 내려오는 소리는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들리는 음파는 이중적이다. 벽을 치는 소리와 내 마음을 치는 소리. 두 공간은 공명하며 하나의 울림을 빚어낸다. 시에서 구체적인 표현을 하지 않으나 화자의 마음은 불이 튀는듯한 혼란과 '두껍게 뭉친 구름'처럼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소리에 결국 공간은 '금이 가서' 물, 눈물을 쏟아낸다. 얼마나 울었던 걸까. 마음속의 구름이 '불어온 바람에 흠실흠실 흩어지고' 화자는 '내 마음을 아는 아버지가 걸어둔' 벽의 '환한 얼굴'을 바라본다. 액자 속의 엄마 얼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은 '통통히 여문 달빛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오실 것처럼' 아름답다. 환한 줄기의 빛! 갑자기 시 속의 화면이 어둠 속에서 광명을 찾은 듯 밝아진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 것이다. 살다 보면 벽에 대못이 박히듯 사람 마음에 대못이 박히는 일이 무수히 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분노와 슬픔, 고통을 이기는 힘은 자기 내부의 빛에 숨어있다는 것을.

액자를 꺼내 먼지를 닦는다. 일 년 동안 일부러 보지 않았다. 어머니를 잊은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던 탓이다. 이기적인 내 마음은 '어머니는 내가 슬퍼하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곤 했다. 액자 속의 어머니도 시 속의 어머니처럼 웃고 있다. 한복 입은 모습이 너무 곱고 예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늘 '걱정하지 마라. 닥치는 대로 살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그 말이 무슨 의미였을까. 살면서 부닥치는 일에 담대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교훈 아니었을까.

시를 다시 본다. 아린 마음과 함께 어머니들의 역사를 다시 읽는다. 풍파 없는 삶은 있을 수 없다. 내게 대못 같은 고통이 박힐 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은 보름달처럼 환한 '내부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역동성을 가진 사유와 행동'이다. 시 속의 화자가 끝내 깨달은 것 역시 '빛 속의 빛'이 가진 우주적 원리가 아니었을까. 세상 슬픈 사람들이 밝은 보름달 하나씩 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눈물에 매달린 슬픔을 지우는 일은 물기를 닦고 눈을 크게 뜨고 나의 '보름달'을 품는 일이다. 찾아보라. 당신 가까이에서 빛나는 꽉 찬 금빛 보름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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