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23.5℃
  • 흐림강릉 30.0℃
  • 서울 24.7℃
  • 흐림충주 25.2℃
  • 흐림서산 23.4℃
  • 청주 24.5℃
  • 대전 24.5℃
  • 흐림추풍령 25.6℃
  • 대구 28.9℃
  • 흐림울산 27.3℃
  • 광주 26.0℃
  • 부산 23.5℃
  • 흐림고창 25.6℃
  • 홍성(예) 24.7℃
  • 흐림제주 29.7℃
  • 흐림고산 22.9℃
  • 흐림강화 22.9℃
  • 흐림제천 23.8℃
  • 흐림보은 24.4℃
  • 흐림천안 24.4℃
  • 흐림보령 24.3℃
  • 흐림부여 24.7℃
  • 흐림금산 25.4℃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8.5℃
  • 흐림거제 24.1℃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정범

시인

시집을 읽다 말고 베고니아 꽃잎을 바라본다. 무수히 핀 꽃은 붉은 살점 같기도 하고 푸른 잎에 돋은 영혼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물과 대상을 만날 때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투영한다. 같은 대상도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그건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속성에서 비롯한다. 눈을 돌려 고통과 사랑에 젖은 시를 다시 읽는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예수다

나이프 들고 웃음 짓는 동물성 식탁 앞에

꽃무늬 속살 드러낸 채

핏물 머금고 매달려 있는 슬픔 덩어리

풀빛 혈통 속에 흐르던

되새김질의 추억은 날 선 칼날에 잘려 나가고

검은 목장에 코뚜레가 꿰어져

핏물 흥건한 들판을 비틀거리며 건너왔다

미슐랭의 별 반짝이는 은접시 위에서

머리 잘린 소가 붉은 울음을 운다

초록의 빛은 쓰러지고

어둠의 목구멍이 온 세상을 삼키는데

별빛 따라 도는 순례객들로 맛집 앞은 출렁거리고

사지를 벌린 그의 십자가가 허공에서 휘고 있을 때

배부른 배고픈 바람의 입술이 중얼거린다

활짝 핀 꽃잎 정말 살이었을까

─ 유정남, 「꽃잎의 살」 전문 (시집 일요일의 화가 8요일의 시인, 도서출판 북인, 2023)

시 속에는 여러 장의 그림이 숨어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예수'─ 첫 행이 매우 강렬하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시적 배경을 생각해 본다. 작품 내에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이 구절은 렘브란트의 그림 '도축된 소'가 모티브다. 뒷다리를 묶어 거꾸로 매단 푸줏간 창고의 소를 그린 그림이다. 검은 공간에 매달린 핏덩어리의 소는 참혹한 느낌이다. 머리는 잘렸고 가죽은 벗겨졌으며 복부가 갈라진 채 뼈가 드러난 모습이다. 식탁 접시에 담긴 쇠고기 부위를 보며 시인은 렘브란트를 오마주(hommage)한다.

미슐랭 가이드에서는'훌륭한 요리를 맛보기 위해 찾아가는 식당'을 별 개수로 가치를 매기는데, 별 숫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이 시의 시적 공간은 '별빛 따라 도는 순례객들로' 출렁거리는 '맛집 식당'이다. 거기에서 화자는 '슬픔 덩어리'를 만난다. '은접시 위에서 머리 잘린 소가 붉은 울음을 운다.' 들판을 뛰던 야생의 '풀빛 혈통'은 인공으로 상징되는 '검은 목장'과 '코뚜레'에 의해 사육되어 종국에는 '날 선 칼날'에 의해 부위별로 잘린다. 노련하게 마무리된 소의 육질은 접시에 담겨 꽃처럼 화자 앞에 놓인다. 그건 누군가를 위해 희생된 제물로 보인다. 화자는 소의 형상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낸다. 시는 죽음으로 인류에게 구원을 준 예수와 물질적 양식을 주는 소를 대비하며 인간의 폭력적인 탐욕을 그린다. 소의 죽음을 통해 '어둠의 목구멍'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이 온 세상을 삼키고 있음을 이야기하며'미슐랭의 별'로 상징되는 심리적 충동과 갈증을 비판한다. 정신의 자양이 사라진 황폐한 세상을 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지를 벌린 그(소=예수)의 십자가가 허공에서 휘고 있을 때' 화자는 새로운 인식에 다다른다. 물질적으로 '배부른' 그러나 '배고픈' 영혼을 가진 이의 '입술'은 '활짝 핀 꽃잎'이 살(肉)인 동시에 영혼이라는 감각적 인식을 한다. 영혼과 육체는 분리된 게 아니다. 살로 이루어진 꽃잎은 육체와 영혼이 함께 존재함을 뜻한다. 우리 영혼의 실존은 무수한 살의 죽음이 있어야 함을 시는 알려준다. 시인이 끝내 말하고 싶었던 건 고통스러운 죽음이 내보이는 침묵의 사랑, 즉 우주적 원리에서 근원 하는 원초적 사랑 아니었을까.

베고니아 꽃잎 하나가 고개를 꺾는다. 붉은 꽃잎의 살에 숨어있는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삶이 영속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식탁 앞에서 늘 경건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고통과 사랑으로 빚은 시인의 꽃잎이 눈앞에 떠오른다. 매달린 붉은 살 속에 숨은 영혼이.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