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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2.20 11:15:53
  • 최종수정2023.02.20 11:15:53

김정범

시인

연초에는 누구나 한 해의 일을 계획한다. 올해 일정을 생각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해야 할 일과 잘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잠시 고민하는 마음을 바꾸는 건 어떨까. 유튜브를 뒤적거린다. 화면에서 물줄기가 거침없이 쏟아진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 2.7㎞의 거대한 이구아수 폭포다. 포효하듯 수직 낙하하는 물줄기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리는 듯하다. 오랫동안 마음에 들어있던 시 한 편이 화면을 따라 흘러내린다.

굴러야 해

무르팍 깨어지고 발목뼈 어그러져도

굴러야 해 상처가 아물면 더 큰 힘이 솟는 거야

자갈길이나 직각의 모서리,

한 길 넘는 바위도 굴러

굴러서 넘어야 해

지나치게 진지할 필요는 없어

한번 지나치면 그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가볍게 튀어 올라 몇 차례의 공중회전

고공낙하의 공포 앞에서 최대한 뻔뻔스럽게

굴려야 해 오래된 전설과 흐르지 않는 절벽,

바위 위에서 낭떠러지를 굴리고

수직으로 떨어지던 절망의 흔적을 굴리고

대대로 유전하는 추락의 트라우마 날려버려야 해

바다에 닿으려면

본디 저의 빛깔로 천년만년

시퍼렇게 살아 있으려면

두 눈 부릅뜨고 굴러야 해

굴려야 해

─ 김경식, 「폭포」 전문 (시집 적막한 말, 다시올 2015)



물의 힘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시다. 시인이 바라본 폭포는 흐르는게 아니라 굴러간다. '구르다'는 자동사이고 '굴리다'는 타동사인데 시에서는 두 어휘가 함께 쓰인다. 시인이 폭포를 수많은 물방울의 집합체로 인식한 까닭이다.

물방울은 스스로 구르고 다른 물방울을 굴리며 아래로 이동한다. 따라서 시 속의 화자는 각각의 물방울인 동시에 다른 물방울과 연합한 폭포인 셈이다. 한 덩어리가 된 폭포는 강력한 힘을 갖고 수직으로 떨어진다. 그 힘은 '오래된 전설과 흐르지 않는 절벽'과 같은 '정체된 자아와 사회'에 내재한 '절망의 흔적'을 지운다. 화자는'대대로 유전하는 추락의 트라우마 날려버려야 해'라고 말하며 강력한 극복 의지를 드러낸다. 추락은 삶 가운데 겪는 '실패'뿐만 아니라 삶의 부단한 '과정'을 포함한다. 목표하는 '바다에 닿으려면' 또한 '저의 빛깔로 천년만년 시퍼렇게 살아있으려면' 물방울은 구르고 또한 굴려야 한다. 부단한 자기 노력과 쇄신 그리고 타인과의 연합이 있어야 자기를 지킨다는 의미다. 시는 폭포의 수직적 에너지를 통해 개개인의 삶과 사회적인 아픔을 극복하려는 초월적 의지를 담는다.

과거에 겪었던 일로 아직 아파하고 있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스스로 동력을 일으켜야 생긴다. 꺼진 엔진을 돌리는 힘은 우리의 내부에서 온다.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인간의 긍정적 사유와 그것을 움직이는 행동이다.

새로 시작하는 올해, 나는 나에게 질문한다. 내 마음의 폭포는 움직이는가. 내 정신의 주체는 스스로 구르며 타인과 결속하고 있는가. 내 안을 응시하고 살아있는 물방울 하나를 주시하라. 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폭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 속의 물방울을 굴려라. 내 물방울은 어느새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타인의 물방울을 미는 힘이 될 것이다. 그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즉 인생 앞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타인과 조화롭게 동행하는 삶을 말한다. 일자(一字)로 곧게 떨어지는 폭포를 보며 계묘년 한 해를 어떻게 가야 할지 다시 계획해 본다. 올곧게 내리뻗는 수직의 힘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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