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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2.17 16:42:53
  • 최종수정2023.12.17 16:42:53

김정범

시인

떠남과 만남을 경험하는 시간,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파란 페이스북에 파란 리본이 박혀있다. 리본에 'With Refugees'라고 쓴 글자가 유난히 추워 보인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파란 리본 함께 달기' 활동을 알리는 메시지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난 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얼음 속일까 불 속일까. 새 희망을 만나고 있을까.

얼어붙은 눈 호수다

먼 북에서 날아온 물오리 일가족

몸들일 물자리 좁아 오종종댈 때

하늘은 서리 커튼처럼 허옇게 흔들리고

모닥불처럼 바짝 붙어

활활 체온 나누는 일곱 장작개비들

눈은 점점 쌓이고

얼음은 더 넓고 두껍게 퍼져 가는데

이제 어디로 가 사나?

저 어린 목숨들 파들파들 발이 시린데

무리에서 저만치 혼자 떨어진 어미 오리

날개 속에 젖은 목 푹 파묻은

언 울음 가슴에 차올라

꽹과리처럼 안으로 쟁쟁 우는

─ 함기석, 「물오리」 전문 (시집 모든 꽃은 예언이다, 걷는 사람 2023)

오리는 항온동물이다. 온몸에 섬세하고 따듯한 털이 있어 야생의 겨울에도 체온을 유지한다. 언 물에서 생활하는 오리는 먹이를 찾기 위해 부리로 얼음을 부수거나 얼음 아래에서 먹이를 찾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생존 활동을 한다. 추운 계절에는 오리는 서로 군집을 이루어 함께 효과적으로 먹이를 찾고 체온을 나누어 추위를 이겨낸다.

하지만 시 속의 오리는 추운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는 놀라운 동물이 아니다. 시는 생존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담는다. 화자가 오리의 모습에서 본 건 절망적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이다. 화자는 눈이 쌓인 얼어붙은 호수를 바라본다. 얼마 남지 않은 수면 위에는 오리 가족이 모여있다. '먼 북'에서 왔다는 건 생존을 위해 더 나은 땅으로 이주했음을 말한다. 새끼 오리 일곱 마리는 '몸들일 물자리 좁아 오종종대며' 체온을 나누고 '혼자 떨어진 어미 오리'는 '날개 속에 젖은 목 푹 파묻고' 울고 있다. 막막한 삶 한가운데 놓인 것이다. '얼어붙은 눈 호수'와 '서리 커튼처럼 허옇게 흔들리는 하늘'의 모습은 자연의 가혹함을 나타낸다. 선택한 새로운 삶에서도 고난은 기다린다. 시는 어미 오리의 모습을 통해 모성적 희생과 선택에 대한 내적 갈등 그리고 연속되는 고통의 삶을 표현한다.

시는 자연과 동물의 생존에 대한 우화적 이미지를 통해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난민의 삶을 이야기한다. 대다수 난민은 여성과 아이들이며 국제적으로 힘없는 약자다. 유엔난민기구가 알리는 세계 난민은 1억 명을 넘어섰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숫자만 1천만 명이 넘는다. 점점 차가워지는 계절,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제 어디로 가 사나? 저 어린 목숨들 파들파들 발이 시린데' 그들의 평안을 비는 시인의 간절한 눈빛이 파란 리본 위에 어른거린다.

시인의 소망처럼 그들이 어느 곳에 닿았든, 그들의 삶이 안정되기를 희망한다. 타인의 땅에서 사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오리와 같은 생명력으로 매섭게 다가오는 겨울을 이겨내길 바란다. 그사이에 모두 안녕 무사하기를, 어디에서든 꿋꿋이 살아남아 언젠간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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