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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 오랜만에 햇살이 내리쬔다. 폭우를 뿌리던 장마는 이제 끝난 걸까. 가슴 아픈 두 주가 지나갔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의 침수 사고로 인해 많은 이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구름과 비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사고의 배후엔 부정확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의 행동이 숨어있다. 매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풀이되는 건 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주의 즉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의 현실만 고려하는 이기적 사유가 팽배한 까닭이다. 불편한 마음을 털며 주황색 시집을 편다.

물에서/숨쉬기는/싫어/더군다나/차가운/물에서/더더군다나/어두운/물에서/발신만 되는/수평선/밑에서/7년이 지났는데도/깜짝깜짝/아직도/무서운 샤워

─ 장우원, 「그런데,」전문 (시집 수궁가 한 대목처럼, 푸른사상 2022)

짧지만 깊은 시다. 물 안과 물 바깥, 시 속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두 세계에 관여하는 건 사랑과 행복이 아니라 지속적인 악몽과 슬픔이다. 시어를 수직으로 길게 늘여 쓴 건 '깊이'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시인은 행 사이에 또 하나의 행간을 두어 숨 쉴 수 없는 캄캄한 물의 공간을 시각화한다. 그 차가운 공간에 갇힌 화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발신'하지만 '수평선 밑'의 음성에 대해 물 밖의 세상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못한다. 고통과 기억은 시간과 함께 흐른다. 지난 '7년'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은 과거를 소환할 것이다. 물속의 끔찍한 고통은 시 속 또 다른 화자의 현실에서 '무서운 샤워'로 나타난다. 물과 접할 때마다 화자는 물의 공포를 체험한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간극이 사라지고 산 자가 죽은 자로 되어가는 트라우마의 전이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픈 시간은 왜곡되며 비극의 변주는 끝나지 않고 다른 이의 삶으로 이어진다. 슬픈 기억은 왜 이리도 끈질긴가. 아픔에 대항하는 본능적인 응전력 때문인가. 시 속의 사건은 전 국민에게 상처를 준 세월호 침몰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죽은 이의 언어를 빌어 우리 삶이 그들과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며 개인적 자아들의 유기적인 연대와 사회적인 자아의 책임을 묻는다. 우리 스스로 상처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또한 미래의 슬픔을 방비하는 지혜를 얼마나 갖게 되었는가를.

오송 지하차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차오르는 물을 헤집으며 탈출하던 순간이 화면에서 흔들거린다. 황토물이 어렵사리 걸음을 딛는 사람들을 휘감는다. 급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몸이 오그라든다. 누군가에게 가장 끔찍한 기억의 날을 만든 오송 지하차도 침수. 정리 상황은 아직 진행 중이다. 떠난 이는 다시 오지 못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며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때때로 냉혹해지는 자연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방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가 아열대로 급격히 변하는 현실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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