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민중시와 서정시의 공존, 투쟁의식과 감성울림의 공존이다. 독재 권력과 맞서 투쟁할 때는 결기 서린 눈빛이 빛나고, 폭압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세목들을 짚어낼 때는 애잔한 감성의 결이 빛난다. 특히 비극의 상황에 내동댕이쳐진 채 바닥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때 서정의 울림은 더욱 깊어진다. 비록 민중시를 쓰는 투쟁가의 면모를 보일지라도 그는 생래적으로 감성에 기울어지는 서정 시인이다. 이런 공존성은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1987)에 잘 녹아 있다. 민중시와 서정시가 공존하면서 격렬한 울림을 낳는 이 시집은 1970년대와 80년대를 살아온 시인 자신의 자전적 연대기이자 시대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실천적 표출물이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2006)에서는 서정시의 농도가 급격히 강화된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애절한 사람들을 시인은 곡진한 마음으로 보듬어 끌어안고 그것을 농익은 언어로 웅숭깊게 풀어낸다. 순하고 착하고 눈물겨운 자들이 처한 내밀한 마음의 풍경들을 감성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 결과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민중의식과 부정의식은 거의 사라지게 되는데, 왜 그런 걸까? 왜 그런 갑작스런 변화가 생긴 걸까? 첫째는 군사정권의 집요한 탄압과 공포, 수배와 투옥과 고문에 따른 정신적 심리적 후유증 때문이다. 둘째는 시라는 예술 장르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종속물로 전락하는 것을 시인 스스로 강하게 부정하고 회의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19년이라는 매우 긴 시차가 가져온 삶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2015)에서는 민중시의 부활 또는 환원을 암시하는 시들이 등장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젊은 아버지와 겪었던 옛 추억을 되살려내기도 하고 눈물겨운 과거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호출해낸다.
에이 시브럴 - 김사인(金思寅 1956∼ )
마음 바쁜데 일은 안되고
일은 안되는데 전화는 와쌓고
땀은 흐르고 배는 고프고
배는 굴풋한데 입 다실 건 마땅찮고
그런데 그런데 테레비에서
'내 남자의 여자'는 재방송하고
그러다보니 깜북 졸았나
아무것도 못한 채 날은 저물고
바로 이때 나직하게 해보십지
'에이 시브럴-'
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자갈밭 막 굴러온 개털 인생처럼
다소 고독하게 가래침 돋워
입도 개운합지 '에이 시브럴-'
갓댐에 염병에 ㅈ에 ㅆ, 쓸 만한 말들이야 줄을 섰지만
그래도 그중 인간미가 있기로는
나직하게 피리 부는 '에이 시브럴-'
(존재의 초월이랄까 무슨 대해방 비슷한 게 거기 좀 있다니깐)
얼토당토않은 '에이 시브럴-'
마감 날은 닥쳤고 이런 것도 글이 되나
크게는 못하고 입안으로 읊조리는
'에이 시브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