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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에이 시브럴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1.24 17:13:03
  • 최종수정2019.01.24 17:13:03
[충북일보] 김사인은 높은 곳의 크고 힘 센 것보다 작고 여린 것들에 마음이 기우는 시인이다. 지배자들, 권력자들, 부와 힘을 가진 자들의 세상을 향해서는 분노의 칼날을 세우고 지배받고 수탈되는 자들,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 빈곤에 허덕이는 자들의 세상을 향해서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펼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대체로 결이 곱고 단아한 형식을 취한다. 정갈한 균제미, 군더더기 없는 축약, 안정적인 호흡, 차분한 감정처리 등이 주요 장점이다. 수사적 과장이 없는 말끔한 문장 형식은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는 시인의 진솔함과 치열함이 낳은 아픈 몸살이다. 그의 시들은 자신과의 싸움, 불의와의 싸움, 권력과의 싸움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된 몸의 또 다른 분신들이다.

김사인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민중시와 서정시의 공존, 투쟁의식과 감성울림의 공존이다. 독재 권력과 맞서 투쟁할 때는 결기 서린 눈빛이 빛나고, 폭압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세목들을 짚어낼 때는 애잔한 감성의 결이 빛난다. 특히 비극의 상황에 내동댕이쳐진 채 바닥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때 서정의 울림은 더욱 깊어진다. 비록 민중시를 쓰는 투쟁가의 면모를 보일지라도 그는 생래적으로 감성에 기울어지는 서정 시인이다. 이런 공존성은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1987)에 잘 녹아 있다. 민중시와 서정시가 공존하면서 격렬한 울림을 낳는 이 시집은 1970년대와 80년대를 살아온 시인 자신의 자전적 연대기이자 시대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실천적 표출물이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2006)에서는 서정시의 농도가 급격히 강화된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애절한 사람들을 시인은 곡진한 마음으로 보듬어 끌어안고 그것을 농익은 언어로 웅숭깊게 풀어낸다. 순하고 착하고 눈물겨운 자들이 처한 내밀한 마음의 풍경들을 감성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 결과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민중의식과 부정의식은 거의 사라지게 되는데, 왜 그런 걸까? 왜 그런 갑작스런 변화가 생긴 걸까? 첫째는 군사정권의 집요한 탄압과 공포, 수배와 투옥과 고문에 따른 정신적 심리적 후유증 때문이다. 둘째는 시라는 예술 장르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종속물로 전락하는 것을 시인 스스로 강하게 부정하고 회의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19년이라는 매우 긴 시차가 가져온 삶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2015)에서는 민중시의 부활 또는 환원을 암시하는 시들이 등장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젊은 아버지와 겪었던 옛 추억을 되살려내기도 하고 눈물겨운 과거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호출해낸다.

에이 시브럴 - 김사인(金思寅 1956∼ )

몸은 하나고 맘은 바쁘고

마음 바쁜데 일은 안되고

일은 안되는데 전화는 와쌓고

땀은 흐르고 배는 고프고

배는 굴풋한데 입 다실 건 마땅찮고

그런데 그런데 테레비에서

'내 남자의 여자'는 재방송하고

그러다보니 깜북 졸았나

아무것도 못한 채 날은 저물고

바로 이때 나직하게 해보십지

'에이 시브럴-'

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자갈밭 막 굴러온 개털 인생처럼

다소 고독하게 가래침 돋워

입도 개운합지 '에이 시브럴-'

갓댐에 염병에 ㅈ에 ㅆ, 쓸 만한 말들이야 줄을 섰지만

그래도 그중 인간미가 있기로는

나직하게 피리 부는 '에이 시브럴-'

(존재의 초월이랄까 무슨 대해방 비슷한 게 거기 좀 있다니깐)

얼토당토않은 '에이 시브럴-'

마감 날은 닥쳤고 이런 것도 글이 되나

크게는 못하고 입안으로 읊조리는

'에이 시브럴-'
이 과정에서 과거 폭압의 시대에 죽었거나 멸실된 자들의 이름을 되뇌면서 시인은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상처와 고문의 공포를 환기해내기도 한다. 또한 옛 고향의 토속어와 일상의 말들을 자유자재로 맛깔나게 부리면서 재미있고 유쾌한 언어감각을 뽐내기도 한다.

'에이 시브럴'은 이런 말의 변화운용에서 나온 것으로 이전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정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치적 색채나 시대 비판은 후면으로 물러서고 피로한 일상을 살아가는 자의 내밀한 마음이 전면으로 부각되어 친근하게 다가온다. 입에 착 붙는 말과 화자가 처한 상황, 그리고 시인의 장난기와 유머감각이 맛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읽는 이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물게 한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일은 안 되고 맘은 허하고 배는 고프다. 바로 그럴 때, 양말을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인간미 넘치는 표정으로 크게는 못하고 입안으로 작게 '에이 시브럴-' 읊조리는 시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귀엽고 앙증스러운 김사인 표 유머시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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