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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8.25 16:09:55
  • 최종수정2016.08.25 16:10:13
공직생활을 이어 온지도 이제 25년이 됐다. 첫 발령을 받은 동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많은 심적 갈등을 겪었었다. 첫 출근한 날, 밤 10시에 퇴근하고 그 다음 날 부터는 밤 12시에 퇴근을 했다. 택지개발로 인하여 업무는 끊이지 않고 날이 갈수록 계속 늘어만 갔다. 지금처럼 주민등록업무가 전산화가 되지도 않은 터라 낮에는 종일 복사하는 발급업무를 했다. 퇴근 후에는 낮에 쌓아놨던 카드를 제자리에 꼽고 주민등록증발급 등 잔무를 처리했다.

그렇게 1주일을 근무하고 나니 입술에 물집이 생기고 피곤이 밀려왔다. "이런 일을 하려고 대학을 다닌 건 아닌데."하면서 심한 좌절감과 우울함으로 많은 방황을 하게 됐다.

자연히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도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원칙에 어긋나는 민원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사정도 들어보지 않고 먼저 거부 의사를 표했다. 업무처리 기준이 있어 발급에 정당하지 않으면 딱 잘라 말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 결과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다고, 냉정하다고, 불친절하다고 비난했다. 얼굴엔 웃음보다는 사무적인 딱딱함이 굳어지고 마음은 조급했다.

많은 민원들로 시끌벅적 한 어느 날, 한 아주머니께서 딸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옆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 하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가자 조용히 다가와서는 눈물을 흘렸다. 간절하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표정에서 딱함과 연민이 느껴졌다.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매일 술 먹고 들어와 살림을 부수고 폭력을 일삼는 단다. 그래서 주소를 옮겨가야 하는데 전입한 주소를 남편에게 알려주지 말라는 부탁이다. 그러나 세대주가 세대원이 옮겨간 주소를 알고 싶다면 알려주는 것이 원칙인지라 그럴 수 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퇴근 후에도 아주머니의 잔상이 '원칙' 과 '소신'이라는 충돌로 머리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퇴근 무렵 한 아저씨가 술에 취해 와서는 집을 나간 부인이 어디로 주소를 옮겨 갔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바로 그 아주머니의 남편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원칙을 준수하자던 생각과는 상관없이 입에서는 주소를 옮겨가지 않았다는 말이 순간적으로 나왔다. 그 순간을 마무리하려고 이러저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는 그럴 리가 없다고 업무처리도 못하는 직원이라며 욕설로 소란을 피웠다. 이를 지켜보던 선배공무원이 그분을 면담하고 이해시켜 조용히 돌아갔다. 방어하려고 말만 앞서던 나와는 달리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선배공무원의 노련한 자세를 보면서 놀랐다. 언제 저렇게 능숙하고 세련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까. 마냥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선배공무원의 노련한 일처리는 하루아침에 다듬어짐이 아니었다. 시민을 위하는 봉사하는 마음의 자세임을 알게 됐다. 그렇게 공직에 들어 첫 멘토를 만나게 됐다.

사람이 살면서 좋은 멘토를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더 없는 행운이다. 사고와 행동의 바로미터인 단 한사람의 스승을 만나고, 또 다시 누군가의 삶의 기준을 정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성공한 인생이지 않을까.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입을 열어 말하기보다는 귀를 열어 상대의 말을 들어 주는 훈련에서 나온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서비스를 받는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좀 더 나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질 좋은 행정을 펼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경험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사람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사람도, 인연의 만남이다. 시민들은 공직자의 서비스를 받는 상대로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무원이 되기 위하여 대학생활 내내 도서관에 앉아 시험공부를 한다는 소식을 매스컴을 통해 자주 듣는다. 너도 나도 공직에 들어 선 걸 자랑스러워한다. 공직에 발을 딛는 후배 공무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열정을 갖고 시민에게 봉사하라" 그러기위해 선배 공무원들과의 소통으로 많이 배우고 느끼고 경험하라는 것이다.

각 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초보자 공무원의 모습을 보면서, 번뜩이는 머리가 아닌 끊임없이 노력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하련다.

순자의 노마십가(駑馬十駕)를 말해주고 싶다. 준마의 하룻길을 아무리 느리고 둔한 말도 열흘이면 갈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행정의 달인'이 될 것이라고.

시민이 항상 웃음 짓고 행복해 하는 그날을 생각하게 하는 날은, 늘 아름다운 오늘이다.

김경숙 수필가

충북대 수필창작교실 수강

푸른솔문학회 회원

신춘수필문학상 작품공모 우수상

영운동 동사무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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