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5.09.03 13:16:44
  • 최종수정2015.09.03 13:16:44
가을이면 맨 먼저 떠오르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은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옥합(玉盒)같은 시이다. 스치기만 해도 흠집 날 것 같고, 잘못 건드리면 깨질까 두려운 시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조심스럽게 옥합 뚜껑을 열어 보고자 한다.

주여! 결실과 고독의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지난 여름, 성숙을 향한 당신의 뜨거운 손길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로 태양을 가리워 서늘함을 주시고, 당신의 그 크신 은총은 열매가 익어가는 들판에 바람으로 풀어놓아 주십시오.

당신의 완전한 말씀으로 마지막 과일까지도 무르익게 하시고, 조금만 더 따뜻한 햇볕을 주시면 과일들이 완전히 익을 것입니다. 아직도 쓴 맛이 가시지 않은 포도주는 달콤한 포도주로 변할 것입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옵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도 깊은 가을 밤 혼자 깨어나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것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처럼 고독한 사람도 낙엽이 흩날리는 가로수 사이를 불안스레 거닐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이 거주하는 단 하나의 집입니다. 우리의 집은 강 건너에 있습니다. 그 집에 아직 당도하지 못했습니다. 강 건너의 집에 이르지 못했기에 우리는 고독하고 불안합니다. 우리의 영혼에 평화가 넘쳐 흐를 때, 그 때 비로소 강 건너 우리 집에 당도할 것임을 알기에, 평화를 주는 한 편의 시를 읽어 보는 것입니다.

/ 권희돈 시인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 - 1926)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