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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바다와 나비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10

  • 웹출고시간2016.05.26 18:58:54
  • 최종수정2016.07.07 17:16:37
김기림의 모더니즘은 1920년대 낭만주의의 병적 감상성, 프로문학의 정치적 관념성을 부정하며 출발한다. 그는 감상주의를 눈물과 슬픔의 감정 과잉에서 나오는 현실도피의 산물로 보고 감상주의 극복을 위한 지적 인식을 강조한다. 감상주의 시에 만연한 음악성을 비판하면서 회화성을 강조한다. 시간성을 비판하고 공간성을 강조한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김기림은 서구문명의 추수와 찬양으로 심하게 기울어진다. 도시, 문명, 기계, 기차, 바닷가, 항구 등을 시적 소재로 삼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이국적 분위기를 짙게 드러낸다. 그러나 대공황(大恐慌 Great Depression)으로 전세계가 대규모 실업과 깊은 불황에 빠져들자 그는 현대문명이 야기하는 인간의 비인간화를 주목하고 휴머니즘을 수용한다. 자신의 모더니즘 시론이 문명예찬과 기교주의에 지나치게 치우쳤음을 자각하고 사상과 기교, 지(知)와 정(情)이 합일된 '전체로서의 시'를 탐색한다.
'바다와 나비'는 이런 변화의 여정에서 태어난 시다. 서구의 현대문명을 태풍에 비유하고 태풍으로 인한 세계의 붕괴와 재생을 다룬 문명비판시 '기상도(氣象圖)'(1936) 발표 이후 자기 존재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통찰이 낳은 결과물이다. '바다와 나비'는 이전의 김기림 시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띤다. 이국적 정서를 드러내는 낯선 외래어가 없고 서구 문명세계에 대한 동경의식도 나타나지 않는다.

꽃이 피지 않은 삼월의 거대한 바다와 가냘픈 흰나비 이미지가 또렷하게 대비되어 있다. 바다를 청무우 밭으로 오인하여 내려갔다가 물결에 날개가 젖어서 지친 공주처럼 돌아오는 어린 나비는 험난한 세파(世波)를 모르던 시인 자신의 낭만적 자아를 표상한다. 거칠고 암울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낭만적 꿈을 좇다 좌절하는 시인의 슬픈 초상(肖像)이 투영된 존재다. 낭만적 꿈이란 드넓은 대해(大海)를 건너고픈 욕망, 시대와 현실을 넘어서서 그가 자유롭게 가 닿으려는 시적 열망 또는 염원일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도 알려준 이가 없는 바다의 수심(水深)은 바다의 물리적 깊이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바다라는 현실이 간직한 공포의 깊이, 식민지 역사에 내재된 슬픔의 깊이, 바닥을 알 수 없는 생의 질곡의 깊이이기도 하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金起林·1908∼ )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그런데 시인은 현실, 역사, 삶에 좌절하고 서글퍼하면서도 정작 시 속에서는 어떤 감정적 파탄도 드러내지 않는다. 주제의식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주관적 해석이나 판단을 일절 중지한 채 객관적 심상만을 제시한다. 지친 모습으로 바다에서 되돌아오는 나비와 나비 허리에 비친 시린 달빛 이미지만 간명하게 제시하여 비애의 정조를 자아낸다.

암울한 식민지 현실에서 좌절된 꿈을 안고 시인이 느꼈을 생의 비애와 고독의 깊이를 짐작해본다. 오늘을 사는 우리 또한 수심(水深)을 모른 채 암해(暗海)를 건너고 있는 어린 나비는 아닐까?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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