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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꽃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16

  • 웹출고시간2016.08.25 16:09:19
  • 최종수정2016.08.25 16:09:19
김춘수의 '꽃'은 우리 국민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폭넓게 사랑받는 시다.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서정적 온기와 고독감이 시의 배면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는 사랑의 정서적 울림 이전에 사물의 존재와 언어의 상관관계를 근원적으로 되묻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시를 비롯하여 김춘수의 많은 시에는 사물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 관념적 응시, 감수성 짙은 묘사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릴케의 영향으로 죽음의 정서가 짙게 나타나던 초기의 시기를 거치면서 김춘수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펼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꽃에 관한 일련의 시들을 쓰면서부터다.

꽃 연작시에는 세계와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인식론과 존재론, 나아가 이데아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시인에게 꽃은 존재 자체로 만물의 아름다움을 대리하는 상징적 사물이지 단순히 잎과 줄기, 꽃잎과 뿌리를 가진 생물학적 대상이 아니다. 꽃은 꽃이라는 언어가 환기시키는 이데아 세계를 표상하는 순수존재이지 인간의 특정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다. 사물이 갖는 이 존재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김춘수의 시는 대상에 대한 회의(懷疑)이자 사물과 언어의 양태(樣態)에 대한 끈질긴 질문이고 존재에 대한 낯선 인식(認識)이다.

시인은 꽃에 부여된 상투적 아름다움과 감상을 제거하여 꽃을 처음의 상태에서 재인식하려 한다. 꽃이라는 사물에게 부여된 관습적인 언어질서를 지우고, 인간에 의해 관념화된 의미를 벗겨내려는 것이다. 꽃을 소재로 한 인식론적 존재탐구는 '꽃을 위한 서시'에도 잘 드러나 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탑(塔)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新婦)여.'

꽃 / 김춘수(金春洙 1922∼2004)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을 위한 서시'는 '꽃'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시다. 시인의 사물에 대한 존재론적 관점, 인식 주체로서의 비애감이 잘 드러나 있는데 사물과의 감각적 접촉은 사물과의 만남, 즉 결혼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시인에게 꽃은 아름다운 신부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눈과 코와 입을 볼 수 없는 얼굴을 가린 신부라는 점에서 사물은 본질적으로 본질을 은폐한다. 즉 시인에게 사물은 근원적으로 무의 어둠 속에 놓인 존재인 것이다. 역으로 시인 또한 미지(未知)의 어둠, 무명(無明)의 시간 속에 놓인 또 하나의 사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안타깝게도 인식 주체로서 꽃이라는 사물의 본질에 가 닿으려는 시인의 꿈은 실현되지 못한다.

이 실현되지 못한 꿈이 시 '꽃'에서는 실현된다. 꽃을 꽃이라고 명명(命名)함으로써 시인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한다. 꽃이라는 사물이 시인의 언어적 명명에 의해 비로소 의미를 발산하는 상징물로 승화된다. 최초의 무명(無名)의 사물이 언어에 의해 의미의 세계로 편입되고 인간의 인식대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꽃'은 사물과 언어의 상관관계를 본질적으로 되물어 사물 자체를 재인식케 한다는 점, 언어에 의해 인간 또한 사물(事物)화 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꽃이라는 사물에 대한 회의적 인식과 사유를 토대로 김춘수는 시의 근본 질료인 언어를 더욱 깊이 탐구해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사고와 목적의식에 갇힌 언어로는 사물의 궁극적 본질에 닿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낡은 언어의 옷으로는 대상 사물의 본질 혹은 절대순수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적 자각에 다다른다. 사물을 지칭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언어가 사물을 왜곡하거나 사물의 본질을 사라지게 한다는 부조리에 봉착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언어의 껍질, 언어의 의미를 벗겨내려 한다. 주관적 감정이나 관념을 일절 배제하고, 의미나 습관화된 판단을 중지시키고, 역사와 사회까지 철저히 차단시킨 채 묘사(描寫)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진입한다. 이것이 김춘수가 도달한 시의 무의미(無意味)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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