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4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불혹(不惑)의 추석(秋夕)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17

  • 웹출고시간2016.09.12 14:55:25
  • 최종수정2016.09.12 14:55:25
천상병은 천진한 아이 같은 눈과 마음을 지닌 순수한 시인이다. 대표작 '귀천(歸天)'으로 국민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시인이다. 그는 동심(童心)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가족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시로 표현했으며,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마음으로 세계를 아름다운 소풍의 공간으로 그려냈다. 그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짧은 소풍을 마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 천상의 삶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가 죽음에 대한 이런 내세관을 갖게 된 것은 종교적 영향이 컸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풍이 시인의 염원 또는 갈망이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에게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시인의 고통의식은 가난, 외로움, 새 등의 어휘를 통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자 시인 자신의 실존을 대리하고 새는 삶과 죽음의 접경지대를 향해 날아간다. 왜 그럴까· 시적 자아가 겪는 지상의 삶이 그만큼 견디기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이다. 새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소재로 자유가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서 하늘에 닿고자 하는 시인의 갈망이 담겨 있다. 고통으로 점철된 지상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에 닿고자 하는 욕망의 대리물로 시인 자신의 초상인 셈이다.

'불혹의 추석'은 천상병의 후기 작품이다. 마흔의 나이에 홀로 추석을 맞이한 시인의 고독감과 고통의식이 드러나 있다. 무지한 자가 말이 많다는 노자(老子)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시인은 빈촌(貧村)의 대폿집에서 어버이의 제사를 지낸다. 찌그러진 상 위에 막걸리 한 사발 따라놓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깊은 상념에 잠긴다. 지나온 인생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이제는 말보다 침묵의 자세로 나머지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이처럼 천상병의 후기 시에는 일상을 소재로 삼아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유, 실존적 자아성찰이 펼쳐진다. 자연의 세계에서 자신의 삶을 조용히 관조한다. 자아의 투영을 가능한 억제해 있는 것을 있는 것 그대로 살려내려 한다. 즉 일상의 소박한 것들 속에서 시인은 삶의 비의를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침묵으로 사색한다. 이에 따라 시의 형식 또한 하강구조를 취한다.

천상병의 시 전반에 나타나는 공간은 크게 상승구조와 하강구조로 양분된다. 상승구조는 시인의 갈망 또는 의식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날아오를 때 나타나고, 하강구조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추락할 때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의식이 상승보다 하강할 때가 훨씬 많고 이런 하강구조는 형식 자체로 시인이 인생에서 겪은 비애와 질곡, 번뇌와 절망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불혹(不惑)의 추석(秋夕) /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침묵은 번갯불 같다며,

아는 사람은 떠들지 않고

떠드는 자는 무식이라고

노자(老子)께서 말했다.

그런 말씀의 뜻도 모르고

나는 너무 덤볐고,

시끄러웠다.

혼자의 추석이

오늘만이 아니건마는

더 쓸쓸한 사유는

고칠 수 없는 병 때문이다.

막걸리 한 잔,

빈촌 막바지 대포집

찌그러진 상 위에 놓고,

어버이의 제사를 지낸다.

다 지내고

음복을 하고

나이 사십에,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 간다.
그러기에 동심으로 채색된 그의 시 이면에 깔린 뼈아픈 고통과 비극의 서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인이 마흔의 나이에 추석을 맞이하며 쓴 또 다른 시 '소릉조(小陵調)-70년 추석에'에도 하강구조가 나타난다.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가족애가 가슴 아프게 새겨져 있다. 삶의 비애와 연민과 경이로움이 함께 느껴지는 시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