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후 시인은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1983)을 발간한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죽음에 대한 변환된 의식, 죽은 사람은 하나의 부재가 아니라 무수한 편재고 죽음의 세계는 추운 저승이 아니라 혼불들이 명멸하는 극광의 세계임을 드러낸다. 「아가가 있는 풍경」은 이 시집의 신비화음(2부)에 수록된 시다. 아가의 흰 기저귀가 나부끼는 곳은 어디든 반야의 나라, 순결한 천사의 나라, 성스러운 백야로 그려져 있다.
주목되는 건 흰 기저귀가 상징하는 순결성과 순수성이 잔악한 현실세계, 죄에 대한 회개가 없는 시대상과 극렬하게 대비된다는 점이다. 흰 기저귀에 자신의 죄 지은 손이 닿을 때마다 적막해진다는 시인의 반성적 고백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빨간 옷을 입고 실로폰 치는 딸아이의 모습과 공중으로 퍼져가는 음악소리가 감각적으로 그려지는데, 이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시인의 깊은 슬픔을 엿본다. 딸아기가 성장하면서 겪어나갈 비극과 고통의 현실을 예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 「엄마의 발」을 보자.
딸아, 보아라,/ 엄마의 발은 크지,/ 대지의 입구처럼/ 지붕 아래 대들보처럼/ 엄마의 발은 크지.// 엄마의 발은 크지만/ 사랑의 노동처럼 크고 넓지만/ 딸아, 보았니,/ 엄마의 발은 안쪽으로 안쪽으로/ 근육이 밀려 꼽추의 혹처럼/ 문둥이의 콧잔등처럼/ 밉게 비틀려 뭉그러진 전족의/ 기형의 발// … // 열개의 발가락들이/ 도화선처럼 불꽃을 튕기며/ 아파아파 울고/ 부어부엉 후진국처럼 짓밟히어/ 평생을 몸살로 시름시름 앓고//…//딸아, 보아라,/ … / 네 키가 점점 커지면서/ 그림자도 점점 커지는 것처럼/ 그것은 점점 커지는 슬픔의 입구,// 세상의 딸들은 하늘을 박차는 날개를 가졌으나/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날지를 못하는구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김승희의 시는 비극의 세계에 방치된 여성 나아가 인간의 실존과 부활을 지향한다. 휴머니즘 태도를 취하면서 달걀 속에서 어떻게 껍질을 깨고 대자연의 대지로 나갈 것인지 몸부림친다.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서 통념에 길들여진 모든 것과의 싸움을 통해 그녀는 다시 원시성의 세계, 유머의 세계로 진입한다. 냉소와 유머의 언어로 식민주의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타자들과의 연대의식을 드러낸다.
아가가 있는 풍경(어린 딸 해인에게) - 김승희(金勝熙 1952∼ )
흰 빨래 나부끼는 곳은
어디든지 반야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신비처럼 어둠이 없는
성결한 백야입니다
거울의 門입니다
순결한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다 해도
크레졸을 푼 물에 깨끗이 담가
다시 순결해지는 것은 더 아름답습니다
마당에 나부끼는 하얀 기저귀는
나의 마음입니다
죄지은 손가락이 그 하얀 빨래에
닿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신안처럼 외로워집니다
자꾸만 적막해집니다
영원히 실수하는 나의 마음을
세숫대야에 담가놓고
요술글자처럼 빨간 옷을 입은 나의 딸이
실로폰 치는 것을 바라봅니다
음악이 기포처럼 날아갑니다
오선지처럼 빨랫줄이
깃을 텁니다
하얀 만다라의 나라,
실타래처럼 순결한 음악의 무지개를
천사들이 나와
빵처럼 뜯어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