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정의 시에는 두 개의 중심축이 있다. 하나는 미군부대에 의지해 살아가는 기지촌에서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이고, 또 하나는 타락한 세상을 아프게 견디는 시인의 상처받은 영혼이다. 더럽고 누추한 진창 또는 기지촌으로 각인된 유년 시절은 시인에게 삶의 허망을 일깨우고 슬픔과 고통을 환기시키는 시간대이면서도 영원한 그리움의 공간, 윤회를 통해 회귀하고픈 안락의 둥지로 그려진다. 이 윤회의 상상력이 타락한 현생에 대한 역설적 힘을 내뿜는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고뇌이자 뼈아픈 실존의 사투라 할 수 있다. 즉 죽음으로의 경사가 짙은 그의 시들을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향한 필사적인 그리움이다.
그는 폐결핵 말기 환자로 자신의 육체적 죽음을 확인하면서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연작과 ·아트만의 나날들· 등의 시들을 써나갔다. 그에게 시는 육체의 죽음을 기록하는 고백의 성소이자 기억의 고통을 기록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병든 개인의 몸으로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었다. 아픈 몸으로 현실에서 체험한 관념의 세계가 허망한 그림자에 불과할지라도 시인에겐 무엇보다 실체적인 실존의 육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절박한 자아인식과 육체인식을 토대로 그는 현대문명 전반이 황폐화되었으며 우리 사회는 미국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철저히 식민지화 되었다고 보았다.
그가 죽음 직전까지 이질적인 언어들을 무절제하게 사용하여 탈(脫)중심주의 시를 쓴 것은 이런 권력중심의 현실, 권위적 엄숙주의 사회, 타락한 자본문명에
아트만의 나날들 - 진이정(1959~1993)
돈은 슬퍼라,
어린 육체보다 더 슬픈 십원짜리 지폐,
황혼, 두견, 소양강 처녀보다 더 슬픈
내 어릴 적의 십원짜리 지폐
미국 중앙정보부가 노나주었던 십원짜리 지폐,
어느덧 나의 사회과학적 상상력은 그 사내의 선의를 믿지 못하네
코끝에선 약냄새가 났고,
미친 듯이 돈을 뿌리는 백인 병사의 곁을 지나
적산가옥 앞길을 지나
포대기에 업힌 나는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었다
외삼촌의 술주정이 약냄새에 섞여 날 어지럽게 한다
박카스를 한 병 마시곤 다시 잠든 외삼촌
그는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의 아트만은 사라지고 없다 한다
그러니 거룩한 브라만의 존재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가 그리워하는 건
박카스에 취한, 구체적인, 생생한 그의 아트만이다
난 그런 현실감에 목마른 것이다
(중략)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다,라는 말씀조차
내겐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다
브라만을 믿지 않듯, 지금 나는
온갖 종류의 아트만을 신뢰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렇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거의 삼십 갑자가 흘렀다
그리고 나는 중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제 난 구체성의 신, 일상성의 보살만을 믿기고 한 것이다
덧없음의 지우개 앞에, 난 흑판처럼 선뜻 맨살을 내밀 뿐이다
아트만이 무너진 마당에
인생이 꿈이란 건, 그 얼마나 뻔한 비유인가
이제부터 나의 우파니샤드는
거꾸로 선 현실이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