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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그라베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8.12.06 17:28:25
  • 최종수정2018.12.20 10:59:27
[충북일보] 김언희 시의 불온성은 기존의 미학적 질서와 금기(禁忌)를 거침없이 위반하고 모독한다는데 있다. 그녀는 현대인들이 은폐한 욕망의 치부들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세계와 사물과 인간을 비유로 위장하지 않고 거죽을 과감하게 찢어 참혹한 생살을 보여준다. 살에 묻은 핏덩이를 보여줌으로써 거죽 이면에 은닉된 고통의 실체를 직시하게끔 한다. 돼지의 배를 가르듯 육체를 갈라 비린내 풍기는 몸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이유는 남성 중심의 세계에 길들여진 여성의 몸에 은폐된 더럽고 추악한 가부장적 근성들을 폭로하고 배설하기 위함이다. 기존의 미적 가치들을 훼손하는 이미지들이 전시되므로 시는 충격적이고 불쾌할 수밖에 없다. 이때의 그로테스크 불쾌감은 남성 지배적 가체체제를 이탈하려는 시인의 모반의식이 낳는 결과물이다. 그녀의 시에 조각난 머리, 절단된 팔다리 같은 파편화된 신체기관과 피, 똥, 오줌 같은 혐오감을 주는 인체분비물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라베 - 김언희(1953∼ )

그 여자의 몸속에는 그 남자의 시신(屍身)이 매장되어 있었다 그 남자의 몸속에는 그 여자의 시신(屍身)이 매장되어 있었다 서로의 알몸을 더듬을 때마다 살가죽 아래 분주한 벌레들의 움직임을 손끝으로 느꼈다 그 여자의 숨결에서 그는 그의 시취(屍臭)를 맡았다 그 남자의 정액에서 그녀는 그녀의 시즙(屍汁) 맛을 보았다 서로의 몸을 열고 들어가면 물이 줄줄 흐르는 자신의 성기가 물크레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사간(死姦)이야 근친상간이라구 묵계 아래 그들은 서로를 파헤쳤다 손톱 발톱으로 구멍구멍 붉은 지렁이가 기어나오는 각자의 유골을 수습하였다 파헤쳐진 곳을 얼기설기 흙으로 덮었다 그는 그의 파묘(破墓) 자리를 떠도는 갈데없는 망령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파묘(破墓) 자리를 떠도는 음산한 귀곡성(鬼哭聲)이 되었다
그녀의 시는 카니발 사회의 야만적 삶, 자본과 섹스로 물화된 자본주의를 비하한다. 현실의 부조리와 위악, 은폐된 성(性) 욕망의 허위, 현실의 폭력 시스템을 폭력적 진술과 냉소로 조롱하고 공격한다. 현실을 파괴하여 공포에 사로잡힌 현실의 맨얼굴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녀의 시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러한 파괴 이면에 상생의 정신, 미학의 재건설이 자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언희의 시는 갱생을 위한 잔혹시, 건설을 위한 파괴시다. 그녀의 시가 문제적인 것은 이러한 역설 때문이다. 또한 욕망의 대상이 비인간적 사물에게도 전이되고 나아가 욕망의 대상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김언희의 시에서 육체는 가학적 욕망만 남은 황폐한 풍경이고, 인간은 섹스 행위만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욕망하는 기계, 죽음의 기계가 된다.

이런 충격적 장면은 시 '그라베'에도 나타난다. 그는 여자의 몸속에 매장되어 있는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또 다시 그 남자의 몸속에 매장되어 있는 여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서로의 죽은 몸속에서 기생하면서 서로를 탐하는 그로테스크 풍경은 죽음의 풍경이자 영원히 죽지 않은 욕망의 풍경이고 죽음과 욕망이 낳는 폐허의 풍경이다. 이런 점 때문에 그녀의 시는 문학의 형태를 빌린 고문대이자 형틀, 그로테스크한 지옥도, 치유 불가능한 정신질환자의 고통스런 기록 등으로 불리곤 한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 그로테스크 미학의 가치와 윤리다. 그로테스크는 도덕과 윤리, 합리성과 이성의 세계가 와해되면서 등장하는 세계 응시의 한 패러다임이다. 그로테스크한 상황과 사건이 벌어지는 시에서 대상들의 기이한 이미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이미지들이 환기시키는 미적 충격과 파장이다. 시를 통한 이물감의 체험 이후 몸에 찾아오는 변화들이 세계를 보는 시선, 즉 나의 감각과 사고와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가 중요하다. 시각적 충격에 의한 통념의 해체와 미에 대한 가치전복의 모티프는 무엇이고, 시인은 무슨 목적으로 그런 혐오스럽고 불쾌한 이미지들을 지속적으로 구현하는가.

흔히 이질적인 오브제 간의 결합, 모순의 공존, 낯설고 기형적인 괴물체, 성적 금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적 이미지들을 그로테스크 이미지와 동일하게 취급한다. 그로테스크를 논할 때 우리가 놓치기 쉬운 점은 괴기함 그 반대편에 위치한 경외와 숭고의 미학 정신이다. 낯설고 끔찍한 이미지와 검은 웃음이 부조리한 사회체제, 죽은 통념들을 전복시키는 힘으로 확산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그로테스크 미학을 담보한 시라고 할 수 없다. 흑과 백, 광기와 괴기, 고통과 유머가 혼합된 사물들을 통해 현실과 인간의 폐부를 찌르고 자극하는 전위적인 눈동자가 도사리고 있어야만 한다. 21세기 우리 시대 전위시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다시 한 번 심도 있게 고찰해야할 시점이다.

/ 함기석 시인

그라베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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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