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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2.26 15:16:44
  • 최종수정2015.03.04 19:42:33

배낭을 짊어지고 빌딩숲을 빠져나와 겨울 산행을 떠났다.

세상보다 먼저 겨울을 받아들인 산은 계절의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고요하다.

겨울의 숨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는 능선에 오르니 비단치마에 수를 놓은 듯 운무 아래로 구부능선이 눈부시다.

앞서 나란히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이 서로를 격려하는 촉촉한 목소리가 다정스럽다. 바람처럼 왔다가 가버린 그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십 수 년 전 이곳에 왔을 적에는 그와 함께였다. 산 따라 물 따라 굽이굽이 스며드는 겨울이 한층 속도를 내고 있을 때였다.

일출을 보기위한 겨울 산 정상에서 칼바람, 거친 호흡도 낭만이었다, 어둠의 뒤편에서 해를 끌어올리는 경이로운 순간에 나는 그를 그는 나를 선물 받았었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내게 우리의 제 2의 인생을 스케치해 보자며 청혼을 했다.

며칠을 생각한 끝에 그와 함께 스케치된 삶의 밑바탕 위에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섞어 채색을 한다면 아름다운 작품이 될 것도 같았다.

혹여, 상상하지도 못했던 고통과 쓰라림이 채색에 덧칠되어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와 함께라면 행복한 삶을 장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와 함께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의 인생작품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조감도 한 장을 내밀었다.·

"우리들의 스위트홈이야"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돌돌 말린 조감도에는 "밀레"의 저녁종소리가 들릴 것 같은 석양이 지는 언덕위에 자리한 아담한 전원주택이었다.

그이의 꿈이었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밤에는 늦도록 독서실에서 꿈을 향한 그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휴식도 단잠도 없었다. 그러던 그가 나와의 제2의 인생에 채색을 다 끝내기도 전, 결혼 13년 만에 혼자만의 먼 길을 떠나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내가 그 희망의 끈을 늦추어 주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은 그를 잃고서야 깨달았다.·

난 함께 채색하던 붓도 놓아 버렸고, 마음의 문도 닫아 버렸다. 마냥 깊고 험한 늪을 쑥쑥 빠져가며 헤매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두렵고 낯설었다.

아침 햇살이 창 앞을 환히 비추어도 그것이 외려 부담스러워 커튼을 내리고, 어린 두 아이가 철모르고 재잘대는 소리에도 귀를 막아버릴 만큼 눈앞이 깜깜했다.

내가 지금 머무는 곳이 실제인지 꿈인지 헷갈리기마저 했다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일어서거라"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버린 딸을 향해 간절히 염원하며 흘리는 노모의 눈물이 후두둑 내 뺨에 떨어질 때서야 힘겹게 눈을 떴다.

현실의 무게가 온몸을 짓누르는 이른 새벽, 아파트 거실 창으로 떠오르는 그날의 일출을 보게 되었다. 몇 날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던, 아니 보지 않았던 그 장엄한 일출을….

어둠을 벗고 어제와 자리바꿈 하는 그 태양은 얼굴을 반쯤 내민 채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고요하고도 묵직한 깨달음이 순간 황량했던 가슴으로 뜨겁게 북받쳐 올랐다.

혼신을 불태워 떠오르는 저 태양이, 그가 천상에서 영원한 영혼으로 남아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제야 널브러진 집안도, 전에 없이 바짝 웅크리고 잠이 든 아이들의 잠자리도 보였다.

아이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쓰다듬어 올리고, 이불도 턱 밑까지 덮어주었다.

깊은 잠이 든 탓인지, 반은 정신 나간 어미의 손길을 모르는지 아이들은 기척이 없다.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고 아직 찬 기운이 서늘한 새벽바람을 방안으로 가득 불러들였다.

흐트러진 몸뚱이를 매 만지고 주방 앞으로 갔다. 며칠이나 주인의 손길을 받지 못 한 싱크대는 어지러움 그 자체였지만 후들거리는 손목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어머니 말씀대로 애들 때문이라도 살아야 한다.

그를 위해 삼시 세끼 준비하던 식사를 이제 남은 우리 셋을 위해 준비하는 거다. 아이들은 싫어해도 그가 좋아하는 잡곡밥을 준비하고 국도, 찌개도, 나물도 예전대로 식탁에 올렸다.

그는 단지 내게서 몸만 떠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아이들도 아빠의 자리가 어땠는지, 어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알 때가 오겠지.

그가 떠난지도 어느덧 십 여 년이 지났다. ·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드디어 함박눈이 쏟아져 내린다. 이렇게 함박눈이 내리던 날 그가 떠난 서글픔에 자꾸만 목이 메인다.

북풍한설 혹독한 추위만큼이나 길었던 시간이었다. 세상의 문을 열고, 붓을 다시 들어 올리고 있는 지금은 그의 분신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채색은 삶의 이치와 깨달음으로 덧칠 하고 있다.

/ 수필가 김민정

김민정 작가 프로필

-수필춘추등단

-한국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여백회회원

-현) 엔지니어링(두림주)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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