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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3.07 17:33:07
  • 최종수정2019.03.21 10:51:44
[충북일보] 가장 늦게 잎이 돋아 가장 빨리 잎을 떨구는 나무는 혹시 감나무가 아닐까? 감나무는 사월 이 되어야 잎사귀를 펴고 뜨거운 한여름을 보내다 가을이 되면 일찌감치 나뭇잎을 떨군다. 감나무 잎의 가을은 오방색의 다양한 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인다. 그리고 잎을 떨군 자리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주홍색 감이 늦가을과 초겨울의 하늘을 향해 드러낸다.

집집마다 감나무 몇 그루씩 서있던 시골의 풍경이 많이 변했다. 집집마다 울타리를 두른 감나무를 타며 친구처럼 함께 자랐다. 차츰 노거수가 되어 가지가 부러지고 기둥이 썩으면서 밑둥치가 잘려 나가버린 지금 고향의 마을은 휑한 기운마저 돈다.

그런데 요즘엔 도심에 심어진 감나무가 많다. 그 중 교차로에 서있는 감나무 한 그루와 나는 매일 출퇴근길에 만나 인사를 나눈지 꽤 오래되었다. 지난 가을에 잎을 떨군 채 달렸던 감들이 찬 서리와 눈을 맞으며 얼다 녹으며 말갛게 홍시가 되었다. 그동안 오가는 새들에게 먹이가 되더니, 새해가 되면서 그 많던 홍시는 없어지고 이젠 뼈대만 남긴 채 겨울을 나고 있다.

감의 태생은 원래 떫다. 가을이 되어 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맛을 보면 여전히 덜 익어 떫은 것이 감이다. 감이 홍시로 익어가는 법은 다른 과일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고난 속에 성숙이라고나 할까. 찬바람과 찬 서리를 맞으며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홍시로 익는다. 벌레들에게 몸을 내주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감은 단맛을 내며 홍시로 변한다.

감나무의 한 해를 살펴보니 우리 삶과 닮았다. 고통을 잘 견뎌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이웃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봉사하는 삶을 보면 더 그렇다. 나날이 뉴스에 올라오는 나쁜 뉴스에 덜 익은 감처럼 떫은 맛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홍시같이 단맛을 내는 좋은 뉴스는 없는 것일까· 나쁜 뉴스에 묻혀버리는 좋은 뉴스를 만나기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새해 첫날에 평생 거칠게 살며 모았던 재산을 기부했다는 H박사님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그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어렵게 공부하여 공학박사까지 받으신 학자였다. 그동안 모은 재산들의 대부분은 가족을 설득하여 수백억 원을 흔쾌히 사회에 환원하셨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는 나눔의 길을 마지막까지 선택했다고 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금전적 기부는 그가 보유한 주식을 장학금으로 기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증여세가 부과되었다. 그로인해 부과된 증여세는 증여자의 뜻에 따라 나라에 동량지재(棟梁之材)를 키우는데 써야한다는 법정다툼에 말년까지 고초를 겪으셨다 한다. 다행히 그의 순수한 기부정신을 국가로부터 생전에 인정받았음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홍시처럼 살다 간 H박사를 보며 홍시로 익어가는 법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려운 환경 속에 당당히 잎을 펴고, 단풍처럼 아름다운 생을 일구어 열매를 맺는다. 마지막 가는 길엔 화려함을 벗어 던지고 긴 시간 찬 서리 찬바람을 이겨내어 비로소 홍시로 익어간다.

홍시가 되어 제 한 몸을 새들에게 내어주던 도심 속 감나무와 같았던 삶. 나쁜 뉴스의 홍수 속에 모처럼 만난 좋은 뉴스였지만 무척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없는 것이 나눔의 삶이 아니던가. 손을 꼭 쥐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간의 삶을 슬그머니 풀어 볼 때도 된 것 같다. H박사님이 가시는 길에 기부보다 더 큰 홍시 같이 남은 삶을 생각해 본다.

박재명

· 문학미디어 수필 등단
· 한국문협, 행우문학회 회원
· 푸른솔문인협회 편집주간 역임
· 현 충북도 농정국 동물방역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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