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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아스가르드의 화석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9.19 13:44:01
  • 최종수정2019.09.19 13:44:01
[충북일보] 함성호의 시는 20세기 현대문명의 박제된 삶과 인간의 환멸을 그린 우울한 지도다. 화려한 빛깔의 빌딩숲은 죽음의 유적지, 환각과 약물이 만연하는 비만한 성지(聖地)로 그려진다. 그의 시는 삶과 죽음, 헛것과 실재, 신화와 현실, 빈집과 무덤이 뒤섞인 건축구조물이다. 혼종성과 복잡성, 종교와 신화의 상상, 불교의 공(空)과 윤회사상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 종교, 철학, 미학을 다채롭게 콜라주하여 재구성한다. 건축학적 상상, 종교적 상상, 신화적 상상을 뒤섞어 현대문명의 폐허들을 전위적 해체의 방식으로 형식화한다. 이를 통해 권위적 모더니즘 예술을 전복시키는 반(反)모더니티의 세계, 반(反)건축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런 그의 파괴 시학은 시집 『聖 타즈마할』과 『너무 아름다운 병』 에 잘 드러나 있다. 고대 무굴제국 왕비의 묘지인 타지마할을 시인은 죽음의 집에서 광기가 낳은 탐미주의 공간, 야만적 죽음의 욕망으로 채워진 허상의 위조공간임을 드러낸다. 이런 부정과 파괴의 정신이 안으로 깊어져 내면화된 것이 병(病)이고 이 치유 불가능한 병은 현대문명에 대한 시인의 분노, 욕망,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이 깊고 아픈 병을 통해 시인은 황량한 인간 내면의 폐허를 목격하고 자신 또한 영원한 시간 속의 찰나적 존재고 꿈의 환영(幻影)임을 뼈아프게 자각한다. 그러니 병은 자아의 존재와 세계의 실상을 자각케 하는 아름다운 병이다.

이 불치의 병의 번뇌에 사로잡힌 채 시인이 도착하는 곳은 속초 바다다. 함성호 시의 파괴공학 반대편에 어머니로 표상되는 가난한 유년과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고향 또한 폐허로 그려진다. 이 폐허의 바다에서 그는 몽환적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고 그곳이 세상의 끝, 죽음의 귀착지라는 절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이 죽음의 폐허지에서 그는 생명의 물소리를 듣고, 다시 잉태의 성지로 재탄생시킨다. 즉 함성호 시에서 공간은 계속 공간을 바뀌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집은 몸을 바꾸어 새로운 집으로 환생한다. 하나의 상처 공간이 또 다른 색깔과 문양의 상처 공간으로 변주된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모든 집은 상처였다"고. 집과 무덤은 주거공간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산 자의 집과 죽은 자의 집, 세계는 늘 집과 무덤의 동거지고 이 혼종의 공간에서 시인은 죽음을 자연의 신성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삶은 죽음을 반복한다. 이 생

아스가르드의 화석 - 함성호(1963∼ )

나는 상상함으로써 존재한다

신의 명상에서부터 흔들리는 숲

저 나무의 명상까지

빈 들판은 얼마나 오랫동안

꽃의 만발을 생각해왔던 것일까?

(새는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골몰했길래

저렇게 공기처럼 가벼운 날개를 가질 수 있었을까?)

물은 둥근 몸에 대해

별은 빛에 대해

데이지꽃은 자신의 중심에 대해

죽음의 의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끝내

우리는 이 가설의 체계를 엿볼 수 없으리

이 광기와, 냉혹한 아름다움의 비밀을

이 차가운 공유의 역설을

존재하지 않지만 가득 차있는 이것을

시간은 낡은 깃대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자연에는 禮가 없으니

눈부시게 반짝이는 저 바다의 비늘을 보라

사막이 꾸는 꿈과

바람이 물을 밀어 결을 거스르는 무늬를

나는 너의 가설이다

내가 환하게 핀 한 그루 사과나무의

다섯 장의 꽃잎에 대해 생각할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사의 윤회는 꼬리를 입에 문 뱀처럼 끝없이 반복 순환된다. 이 징그러운 윤회의 원운동이 그의 시 저변에서 공허와 아픔과 사색을 낳는다. 세계는 처음부터 텅 비어 있고 나는 본디 혼자라는 뼈아픈 자각, 그런 부재와 고독 속에서 만물은 흐른다. 인간도 인간의 육체도 사랑도 번뇌도 꿈도 시도 흐른다. 그의 말처럼 자연에는 본디 예(禮)가 없고, 인간은 모두 가설적 존재인지 모른다. 너는 나의, 나는 너의, 상상 또는 환몽 아닐까.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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