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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3.17 16:33:18
  • 최종수정2016.07.07 17:13:53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에 나오는 사설이다. 어떤 꽃이 섣달에 피었기에 그런 민요가 불리어졌을까. 눈꽃 속에 피어나는 매화를 보러 순천시 낙안면 금둔사를 찾아갔다. 백설 엄동을 헤어나는 설중 홍매가 너무도 아름답다. 추위를 이기고 핀 꽃이라 더욱 애처롭고도, 청정하여 선경(仙境)의 주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저렇게 연약한 꽃이 일찍 피어야하는지. 꽃잎의 떨림이 범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고생을 이겨내는 한스러운 떨림일까, 개화에 성공한 환희일까, 촘촘히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도 찬바람 겨울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아름다움에 가려진 애환의 뒷이야기가 들릴 것만 같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지 않던가.

곱게 핀 설중매를 바라보며 추위에 떨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담임했던 비진학반 어린이들이다.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해야했던 떨림이 눈에 선하다. 헐벗은 그들에게 부과되는 실습은 농사일이었다. 실습지를 운영하면서 그들이 받아들이는 역할은 땀 흘리는 노동의 고달픔이다. 창의성을 가미하여 작물을 가꾸려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겠는가. 실습을 끝내고 입실할 때마다 진학반 공부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하는 눈빛이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졸업식 날 부형님들이 마련한 주석에서 담임 소감을 말하는 기회가 있었다. 가슴에 맺힌 이야기 너무 많지만 수학여행 추억을 말했다. 우리 반은 겨우 다섯 명이 참가했다. 그래도 담임은 거기를 따라가야 한단다. 지시에 따르면서도 대부분을 남기고 떠나는 마음이 아파 돌아서 울었다고 회상했다. 공책 한 권씩을 나누어주고 과제를 내주면서 힘없이 귀가하는 그들을 보며 꽃밭에 숨어 울던 이야기를 하면서, 잘살아 보자고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왜, 눈 속에서 피는 매화를 보면서 옛 제자가 생각날까. 저 설중매 같이 너무 일찍 생활전선으로 내 몰렸던 그들이다. 고인들이 지적한 인생의 세 가지 불행 중 소년등과(少年登科)를 첫째로 꼽았다. 중년상처(中年喪妻), 노년무전(老年無錢)은 이해가 되는데, 조기출세인 소년등과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도 벼슬길에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었다.

"일찍 과거에 급제하면 좋은 죽음을 얻지 못 한다는 소년등과(少年登科)부득호사 (不得好死)"의 가르침을 꽃을 보며 깨닫는다. 조기에 피는 매화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 눈 속에서 피는 저 꽃이 열매는 어떻게 맺을는지…….

가고 싶은 배움 길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한 일에 뛰어들어야하는 그들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었다. 일찍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자기를 키운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배움 길 최후의 담임이라며 나를 따르던 제자가 조졸(早卒)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운명이라 하기엔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 꽃샘추위가 닥쳐와 저 꽃 떨어지면 어쩌나. 먼 옛날 그들의 미소와 떠들던 소리가 매화의 떨림에서 들릴 것만 같다.

무르익은 봄 동산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 더 복 받은 꽃이리라. 좋은 환경에 태어나서 적기에 교육을 받고 즉시 취직하며, 적시에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하여 키우는 행복이 삶의 정도가 아닐는지. 생명체들은 다 그러하기를 원하리라. 속성재배, 조기 교육, 조생종……. 서두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리.

설중홍매를 바라보며 고진감래(苦盡甘來)요, 비진흥래(悲盡興來)라는 말이 맞는 말인지.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에 등장하는 꽃은 저 설중매 같이 인의(仁義)를 지키며 곱게 살아도 부귀하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한을 노래한 것이 아닐는지 옛 추억 속을 헤매며, 꽃 속에서 연무의 꿈을 꾸고 있다.

이재부 수필가 프로필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전 푸른솔문인협회장

-한국문인 수필, 詩 등단

-대한문학상, 한국문인상, 제7회 홍은문학상 수상

-저서 /서간문집 《사랑하는 사람아》, 시집 《사랑빛 방황의 노래》

-수필집 《부부백경》 《강으로 지는 노을》 《백팔 번뇌》 등 다수

-초등학교 교장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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