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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해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23

  • 웹출고시간2017.01.12 18:19:08
  • 최종수정2017.01.12 18:19:08
박두진의 시는 주로 산과 강, 해와 달 같은 자연물을 토대로 삼는다. 그러나 김소월의 한(恨)의 자연, 김영랑과 정지용의 감각적 자연과는 확연히 다르다. 또한 청록파(靑鹿派)로 함께 활동한 박목월, 조지훈의 자연과도 다르다. 박목월은 향토적 자연풍경과 정서를 전통의 가락에 실어 상징의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조지훈은 고전적이고 동양적인 자연을 아름답고 격조 높게 재창조했다. 간결한 표현과 외형률을 중시한 이들과 달리 박두진은 자유로운 산문시를 추구하여 밝고 힘찬 상승(上昇)의 시학을 펼친다.

박두진 시의 소재들 중에서 밝음과 희망을 구현하는 중심 심상은 해다. 일몰과 어둠이 부정적인 현실을 나타내는 절망의 이미지로 사용되는 반면에, 해는 어두운 절망을 뚫고나오는 희망의 기표로 사용된다. 시인에게 해는 고난에 처한 개인 나아가 민족과 시대의 암흑을 몰아내는 희망의 상징물이자 순수 열망의 투사물이다. 이처럼 박두진의 시에서 해를 포함한 자연은 절망과 고통에 빠진 자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메시아 역할을 한다. 즉 박두진의 시에서 자연은 종교성을 짙게 띤 자연이다. 구약성서의 신화적 요소들이 투영된 자연이고 신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이다. 전쟁과 살육을 끝낸 화해의 자연, 인간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신의 마음이 내포된 자연이다. 이런 관점에서 해방 이듬해인 1946년 5월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 '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해 - 박두진(朴斗鎭 1916~1998)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이 시에서 해는 수많은 상징으로 사용된다. 일제강점기의 어둠을 과감하게 몰아내는 새 역사의 시작, 절망의 상황을 끝내려는 빛의 이글거림, 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의 서곡, 인류의 구원을 위한 광명의 신호탄 등 매우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독자들이 놓치기 쉬운 점은 시인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반복하며 외치는 상황이 짙은 어둠 속이라는 사실이다. 달밤조차 싫다고 반복해 외치며 시인은 음지를 벗어나 양지로 가고 싶어 한다. 사슴을 따라 밝은 빛의 세계로 가고 싶어 한다. 그만큼 시인은 새와 꽃과 짐승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노는 빛의 세계를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바람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바람이라는 점에서 이 시의 역설적 슬픔은 깊어진다. 따라서 시의 의미 이전에 시인을 둘러싼 비극적 현실, 암흑의 당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절망적 시대상황 속에서 시인은 해를 통해 밝고 희망찬 세상이 오길 염원했던 것이다. 이글거리는 해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 나아가 모든 생명체들이 아름답게 상생하는 평화의 세상이 도래하길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이처럼 박두진의 시, 특히 광복 이후의 작품에는 기독교적 지향성이 짙게 나타난다. 창세기, 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같은 성서의 신화 모티프를 바탕으로 삼은 작품들이 많다. 종교적 상상력을 통해 시인은 고통과 절망에 처한 민족의 아픔을 달래고 어둠으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한 것이다. 즉 그에게 신(神)은 인간의 마음속에서만 사는 특별한 우상의 존재가 아니라 역사의 질곡에서 평화와 사랑을 낳는 실천가였던 것이다. 박두진의 시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주 신을 대리하는 사제 역할을 하는 것은 이런 종교적 세계관 때문이다.

박두진이 '해'를 쓰던 해방기의 시대상황과 현재의 시대상황은 문양과 색채가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국가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지 못하고 절망과 고통을 안기는 비극의 시대라는 점은 공통점일 것이다. 짙은 어둠을 맹수처럼 뚫고 나와 참된 희망의 빛을 선사할 아름다운 해의 출현이 기다려지는 새해다.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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