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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6.09 16:16:07
  • 최종수정2016.07.07 17:16:56
어느새 초여름 햇살이 따끈 거린다. 내가 사는 서원구 남이면 가마리 동네는 낮잠에 든 듯 조용하다. 도심 속의 시골, 이곳 가마리 동네 고샅마다 복숭아, 살구가 토실토실 하게 살이 오르고 있다. 동네 앞에 있는 안산 길을 걸으며 나지막한 언덕길로 올라섰다. 지금은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밭을 바라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지금쯤이면 밭고랑마다 파란 보리 싹들이 푸른바다를 이루며 실바람 타고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곤 했었다. 언제부턴가 보리밭골, 보리 싹, 보리이삭 보기가 힘들어졌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무색해진 세태(世態)를 보며 허무하고 서글픈 마음이 든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보릿고개 추억은 영원히 지워지지가 않는다.

보릿고개는 농촌 사람들이 봄철을 맞아 힘겹게 살던 때를 의미한다.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쌀이 모두 고갈됐었다. 식량이 부족하니 먹고 살기가 힘든 세월이다. 가난과 궁핍 속에 살아온 힘든 인생길 이었다. '봄 사돈은 꿈에도 보기가 무섭다.' 는 속담이 있는데, 그건 봄철 식량부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대농가였던 우리 집도 봄이 되면 쌀독 긁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해방 후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봄철 도시락은 까만 보리밥으로 채워져 있었다. 반찬이라야 마늘장아찌에 먹는 보리밥 이었지만 점심시간이 기다려지곤 했다. 가난하고 고달픈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게 춘궁기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자연이 기지개를 켜고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찬 계절임에도 보릿고개는 어두운 그림자였다. 모든 게 부족하여 고생하며 살아온 시절은 고난과 시련의 세월이었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아끼고 절약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맨발로 뛰었다.

모든 게 부족해 고생하며 살아온 시절은 어쩌면 고난과 시련의 세월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그 사람들은 청춘을 불사르며 열심히 살아온 세대였다. 가족들과 눈물 속에 공항의 이별을 하며 이역만리 서독으로 떠났던 광부와 간호사, 배낭 메고 태극기 흔들며 군함에 오르던 월남 참전 용사들, 한 푼 이라도 더 벌기 위해 열사(熱砂)의 땅을 오고 가던 중동 근로자들…

우리는 전쟁의 폐허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모든 고생을 다 하며 살아온 고난을 겪은 세대다. 물질만능에 사로잡혀 정신적 가난을 겪는 사회현상을 더러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궁핍을 모르고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보릿고개 넘으며 살아온 세대들은 어렵게 살았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었다. 부족한 것 모르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혹시라도 정신적 가난에 빠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50여년 세월은 가난과 굶주림의 세태(世態)가 변하여 풍요와 여유로움으로 바뀌었다. 가난과 궁핍을 모르고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가난을 상징하는 대명사 춘궁기나 보릿고개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풍요로운 물질만능시대임에도 오히려 정신적 가난에 빠져 헤매는 젊은이들이 많아 불안한 마음을 금 할 수 없다. 근면과 성실함으로 노력하는 덕목은 뒤로 한 채 갈수록 인간애를 찾아보기가 힘들고 흉악한 범죄가 빈번하고 자살 율이 급증하는 건 왜일까.

부족함이 없는 세대임에도 정이 메마르고 감사 할 줄 모르는 건 왜일까.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있음을 다시금 돌아본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을 했으므로 그 고생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하다 보니 원하는 것을 무조건 채워만 준 건 아닐까.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울타리라야 싸릿가지가 전부이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웃 간에 인정이 오가던 농촌이었다. 힘들게는 살았지만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단란하게 살던 시절이었다. 동구 밖 느티나무 그늘 아래 매어놓은 황소가 울던 그 시절 농촌의 향수는 잊을 수가 없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게 자랑꺼리는 아니지만, 오늘따라 익히 알고 있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잡는 법을 가르친다는 유대인들의 자녀교육방법이 부럽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즉 옛 것을 익혀서 새것을 만들 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논어의 한 구절이 긴 여운으로 떠오른다.

이황연 수필가 프로필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성균관 典人

저서: <인생과 나의 삶>.<강을 건너온 바람(공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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