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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2.06 17:37:51
  • 최종수정2018.12.06 17:37:51
[충북일보] 중년 내 삶의 여유는 꽃씨를 받으러 다닐 때 겨우 생긴다. 늘 바쁜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와 씨 받을 기회를 놓치곤 했다. 올해는 일찍 서둘러 초평 저수지 근처로 부용 씨를 받으러 나섰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집 근처 아파트 작은 화단에서 우창꽃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 꽃 앞에서 거의 넋을 잃었다. 80cm 가량 크기로 곧게 자란 짙은 암갈색 줄기 끝에 트럼펫 모양으로 자색꽃이 청초하게 피어 있는 그 자태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멕시코 카브리해를 건너온 외래종인 만큼 견디느라 안간힘을 써온 내공이 몸 전체에 나타나 있다. 꽃잎이 작아 쓰러질 리도 없는데 꽃대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꼿꼿하게 서 있다. 자색 꽃은 꽃대의 고충을 아는 듯 될 수 있는 한 봉오리를 오므리고 다소곳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이 꽃은 요란하지 않아 나비도 날아들지 않는다. 감히 엄습을 못한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나비는 날아들지 않지만 꽃대의 곧음 속에서 나오는 힘이 대단하고 마주나기로 질서를 이루고 있고 잎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얇은 톱니까지 있어 바라보는 순간 에너지가 확 느껴진다. 곧음과 날카로움 거기에 가지가 가늘어 주변 여유 공간까지 나오게 하는 그 자태와 나를 비교해보면 단연 내가 평민이고 그가 귀족이다. 이 꽃은 그렇게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우리는 망연자실 그 앞에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하지만 시큰둥하지 않는 그 녀석의 선비다움이 더 매력적이다.

"여보 우리 백일홍, 장미, 부용. 해바라기 다 집어 치우고 이 꽃만 키웁시다. "

남편도 단번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욕심도 많고 부산하고 억척스러운 내 삶이었지만 진정 내가 원했던 삶은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고 깊은 우창같은 삶이었음을 감지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요즈음은 들판으로 꽃씨를 받으러 가지 않고 우창을 삼목하기에 바쁘다.

틈틈이 잘라다가 화분에 꽂고 물을 준다. 어제는 가지를 잔뜩 싣고 왔다. 꽃이 예쁘니까 자꾸자꾸 뿌리째 없어져 관리소 아저씨가 싹뚝 베어버리신 것이다. 우리는 횡재를 했다. 그 많은 가지들을 정성껏 꽂고 물을 주고 나니 잠이 달아나 버렸다.

천 평이 넘는 고향 산비탈 밭에 이 꽃 저 꽃 손 닿는대로 심으며 살아온 지 벌써 10년이다. 주말마다 그 곳에 가면 들꽃과 우리가 심은 꽃 중 누군가는 피어 있어 우리는 그 곳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날은 옥잠화꽃이 어찌나 예쁘던지 보는 이 없어 얼마나 서러웠을까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 꽃이 좋아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그 곳을 찾아다닌 세월이 얼마인가. 아무리 바빠도 주말이면 여전히 그 산밭을 오르고 있는 나를 보면 꽃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우리 남편은 중학교 때도 원예반을 했었고 평생을 두런두런 화분에 물을 주며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 다 죽어가던 식물에서 꽃이 피어 오르면 그 때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옆에서 보는 나까지 행복해지곤 한다.

꽃은 잠자고 있는 우리의 가슴을 깨워내는 재주가 있다. 들꽃이 핀 가을 들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은 꽃들의 눈부신 모습에 기쁨과 환희가 솟아 오른다. 바람이 불면 억새가 한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며 라인댄스를 하고 있다. 덩달아 좋아하는 여섯 살배기 손녀를 보며 자연이 주는 위대함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창을 보고 경이로움에 가까운 감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때부터 청주로 유학을 나온 그 소년이 훌륭한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은 큰 거목이 아니라 작은 들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구름이 요술을 부리고 있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자연은 언제나 여유 있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물을 자주 주지 않고 오물을 버려도 원망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꽃을 피워 낸다.

우창꽃 앞에 서서 그 도도한 자태를 보며 내 삶의 부끄러운 일상을 털어낸다. 트럼펫 모양의 자색꽃이 나에게 교훈을 전하고 있다. 과욕을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 것이며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제 우창과의 만남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새로운 변신을 꿈꾸고 있다. 그저 꽃밭이 아니라 정제된 소금같은 화단이 될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

연순동

·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충북대학교 일반대학원 교육행정 박사과정 수료

·교직 40년 6개월 정년퇴직하면서 황조근정훈장 수상

·청주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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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서울] 더불어민주당 오제세(청주 서원·사진) 의원은 국회가 법정기한(12월 2일)을 넘기고도 2019년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피력했다. 오 의원은 4일 기자와 만나 "입법기관인 국회가 당연히 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법을 지키지 못 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선거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예산과 연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며 "예산은 예산대로 조속히 통과시키고 선거법은 큰 틀에서 합의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의원은 100만 인구에 못 미친 청주시의 특례시 지정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오 의원은 민주당 소속 김병관(성남 분당갑)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지방자치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동참했다. 오 의원은 "특례시로 지정되면 광역단체의 사무와 권한을 일부 이양받아 행정·재정 자율권이 확대되고 세수가 늘어난다"며 "그간 예산, 조직, 인력면에서 부족하고 불이익 많이 받은 점도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역시는 안되더더라도 특례시로 지정되면 조직, 인사,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