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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0.01 13:29:05
  • 최종수정2015.10.01 13:29:05
세상살이는 머리에 새기며 살고 고향은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낯익은 것에 정들어 가고 묵은 것에 연민이 더해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고향 그리는 연연함을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삶도 팍팍함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내 사춘기적은 가시밭길 가난의 연속이었다. 아버지 사업실패로 명절이 되면 부모님의 한숨소리가 문지방을 넘었고, 어린 두 동생은 남이 가져다 줄 음식생각에 사리문만 들락 낙락 거렸다. 어머니는 졸지에 풍지박산 된 충격에 말문을 막으셨던 2년 동안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 암흑이었다. 한가위라고 별 수 있겠는가· 이웃 친지 친구들의 배려로 가져다 준 음식을 나는 차마 먹지도 못한고 목만 메여와 휘영청 밝은 달만 보며 밤새도록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의 말문이 트인 그 해 추석 무렵이었다. 당신이 예전에 아끼시던 분홍색 모본단과 노랑색 뉴똥 한복을 앞섶도 뜯어내고, 치마폭도 가르시어 우리자매 원피스를 만드셨다. 곪았던 상처 패인 곳을 메꾸시듯, 인두질로 접혀 버린 마음의 주름을 펴 나가시던 어머니…….

허리가 잘록 들어간 원피스를 입혀 주며 다음에는 '꼬옥…' 입속말로 얼버무리셨던 어머니의 속내를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새 추석빔을 해 주지 못하는 헤질 대로 헤진 너덜너덜한 어머니의 마음을 기어줄 바느질을 나는 그 때 알지 못했다.

팔월 열나흘 밝은 달은 울창했던 우리집 대나무 숲에 걸렸든지 밤이 깊었어도 마당을 떠날 줄 몰랐다. 평상에 달빛을 이불삼아 다섯 형제는 아버지의 어릴 적 추석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몇 날 며칠 동안 만든 음식들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실 만큼 풍성한 명절이었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눈가에 이슬이 보였다.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있을까· ……. '

오빠의 최신 가요가 밤공기를 흔들어 깨웠고 호롱불 아래 가난한 추석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

한가위 달은 아버지 마음처럼 크고 밝았다. 모래사장을 거닐며 나를 업어 주는 것을 즐기셨던 아버지 등에 엎드려 파도소리에 잠드는 것을 나는 제일 좋아했다. 기름기 자르르한 송편 두 개를 겹친 듯 희고 밝은 달 아래 소복 차림의 아낙들이 불붙은 소지장을 붉은 나비처럼 하늘로 올려 보내든 곳, 남편의 무사귀환과 만선을 기원하던 일념의 몸짓은 달빛아래 애처롭게만 보였다. 고무풍선 나팔을 불며 모래사장을 질주하던 어린 아이와 강아지도 멋진 풍경이 되던 곳이 내 고향 통영이다.·

그 고향 떠나 온 지 어느 듯 반세기가 넘었다. 내 기억 속 고향은 언제나 푸르렀던 고향으로 돌아가 젊어서 좋다. 외로운 날도 슬픈 날도 고향을 떠 올리면 알지 못할 숙연함에 그리움만 더해간다. 십 삼년 전 망막을 다쳐 긴 병상생활에서 애타게 보고 싶었던 것은 부모님과 고향이었건만 이제는 누구 도움 없이는 갈 수도 만날 수도 없는 고향이 되어 버렸다. 간다손 치더라도 희미한 시력 앞에 수정같이 맑은 하늘이며 녹색 바다에 떠가던 총총한 별들을 볼 수가 없다. 많은 정을 주던 사람들의 얼굴조차 알아 볼 수 없는 서러움만 안고 돌아와야만 될 처절함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는가·

차라리 묻어 두리라. 이제는 타향이 고향으로 여겨지는 옥산에서 올해도 열세 번째 맞는 한가위 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의 고향달이나 오늘의 타향 달이나 달은 매 한가질 텐데, 왜 이리도 낯설고 슬퍼지는지 모르겠다.

가을 탓만은 아니리라. 아직도 잊지 못하는 한가위 날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고향은 늘 나를 오라 손짓해도 나는 갈 수가 없다. 긴 세월 묵어서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광을 가슴에 걸어 두고 골동품 같은 진득함으로 살아있는 날까지 간직하리라.

△ 김점자 수필가 약력

충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료

충북도민백일장 장원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학 작가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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