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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12.18 18:47:03
  • 최종수정2014.12.25 16:11:48
아침에 커튼을 여니 눈이 내린다.
 

평곡벌은 까무룩 눈발에 잠기고 자다 깬 가로등 불빛이 잔광을 내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서설을 밟았다지만 나에게는 이 눈이 서설이고 첫눈이다.
 

크고 작은 눈발이 입성 한 장 걸치지 않은 나목들 가지에 내려앉는다. 백설분분한 아파트 마당에는 한 옥타브 높아진 아가들 목소리. 얼른 앞창에서 뒤창으로 간다.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아가들이 등에 저보다 큰 게딱지 란도셀을 메고 종종걸음이 바쁘다.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눈을 받는 아가, 눈을 받아먹겠다고 얼굴을 쳐들고 입을 벌린 아가, 내 눈에는 저들이 눈송이로 보인다.
 

아무 걱정 없는 천진한 유희, 옆에 있는 어른들은 눈 때문인지 움츠려드는데 아가들은 꼿꼿하게 밝기만하다.
 

그때 한 어린이가 옆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로 쪼르르 뛰어간다.
 

아파트 마당에 오는 눈은 오는 대로 녹아서 물기가 되는데 놀이터에는 떡가루를 뿌린 듯 온전히 하얗다.
 

아가는 환호하며 완벽한 순결위에 점을 찍는다. 콩. 콩 .콩..... 。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발자국은 그대로 음표다.
 

그래, 하늘이 허락하는 아가들의 세상도 이렇게 첫눈 온 날 놀이터처럼 깨끗하기를, 아무리 번다한 어른들 세상이래도 동심의 영역만큼은 이렇게 보호되기를.
 

노란 버스가 천천히 들어온다. 그사이 놀이터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을 뭉친 아가들이
 

눈을 들고 타려하자 엄마들 손길이 떨쳐낸다.
 

아침밥 지을 생각은 안하고 다시 앞 창 앞에 선다.
 

바람을 타고 눈은 분분하게 내린다. 젊었을 때는 첫눈 오는 날 첫사랑과 만나자는 약속도 했지만 세월 탄 간이역엔 기다림도 떠나갔다.
 

마음은 설피를 신고 싸리문을 나선다. 언제나처럼 문을 나서면 겨울 사과밭이다.
 

사과나무를 스물다섯 해 길렀으니 내 의식 한가운데는 어쩔 수 없이 사과밭이 들어있나 보다.
 

과수원의 사계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중 가장 좋아한 겨울 과수원, 대지는 눈 이불을 덮고 고요하다.
 

뒤끓던 애증도 헛된 희망도 모두 벗어놓고 평화롭다.
 

그 대지에 뿌리박은 사과나무들, 다산의 여인처럼 등 굽고, 상처입고 본새 예쁘지 않은 나무들은 신음소리조차 숨죽인 의연한 은자다.
 

세상에서 스타가 되고 싶은 날, 아니 스타가 되려다 좌절한 날 그 사과밭에 서면 나무는 그냥 살라고 찬바람 가르는 나무울음으로 달래줬다.
 

그리고는 은근히 스타이기를 그만둘 때 네 삶은 영근다고 귓속말로 일러줬다.
 

겨울 사과밭이 나를 흔드는 것은 정직한 모습 때문이다.
 

꽃으로 말하는 봄보다 잎으로 욱어지는 여름보다 탐스러운 사과로 찬란해지는 가을보다 희망, 명예, 욕망 다 벗어버린 헐벗되 궁하지 않은 존재의 가벼움. 시시비비 가리지 않고 도토리 키 재기 경쟁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군자의 모습이 좋아서다.
 

그것은 자족의 삶이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내 의식은 설원으로 떠난다. 가지고 갈 것은 없다.
 

그동안 어디다 빼놓고 살았는지 모르는 나를 챙겨 나만 가지고 가면 된다. 캠핑족처럼 설원 가운데 상상의 텐트를 치고 때 묻은 의식을 벼리고 싶어서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본연의 나와 대좌하고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다.
 

그리고 세상에 나갈 때면 눈처럼 맑아지고 깨끗해져 새로 태어난 아이로 서기 위해서다. 눈이 와야 겨울이다.
 

겨울은 피 뜨거운 사람들조차 내향하게 만드는 마법의 계절, 봄, 여름 , 가을 내내 밖으로만 나가던 발걸음이 모처럼 불빛 아래로 모여들어 체온을 나누는 사랑의 계절, 환영한다.

수필가 / 반숙자

반숙자 수필가는…

-한국수필과 현대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회원, 한국문인협회원, 수필문우회원

-수필집: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천년 숲, 등 다수

-수상: 현대수필문학상, 제1회 월간문학동리상 외 다수

-현재 음성예총 수필교실, 대소, 음성 주민자치수필교실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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