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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7.19 17:18:28
  • 최종수정2018.07.19 17:18:28
[충북일보] 고향을 떠난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고향에 가고 싶어 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의 오후에 "택배요"소리에 나가보니 고향에 있는 6촌 동생이 보내온 대학 찰옥수수와 강에서 잡은 냉동된 물고기였다. 마당에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면서 유년시절의 고향 생각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내 고향은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 (잉어수)마을이다. 마을 옆으로 남한강 줄기인 목도 강이 흐르고 김별산과 상봉산 정기아래 넓은 평야가 이루워진 농촌 마을인데 전기가 괴산에서 제일 먼저 들어올 정도로 문화, 교육 마을로 손꼽혀 온 고장이다

마을 영산인 상봉산 기슭에는 수심이 3m이상 되었는데, 늘상 잉어 떼 들이 무리지어 유영하고 있어서 잉어수 마을이라 하였다고 한다. 유년시절 당시 평소 강폭이 200m 정도로서 아주 맑은 물이 흘러 동리사람들은 이강을 삶의 근원으로 삼아 물을 길어다 먹고 빨래도 하며 여름이면 낮이나 밤이나 멱을 감으며 더위를 식혔다.

나는 부농의 종손으로 태어나 어릴적 1950년대 당시 누구나 농촌에서는 빈곤의 연속으로 지게질, 농사일을 했지만, 나는 고생 없이 귀하게만 자라서 남들은 일하는데 강과 더불어 놀은 것이 지금 생각하면 미안스럽고 쑥스럽기까지 하다. 메기, 뱀장어, 꺽지. 빠가사리, 피라미, 모래모지, 등 여러 수종이 많이 서식해서 고기 잡는 재미가 10대의 일과였다. 그 시절에는 어항도 없어 세숫대야나 장독 뚜껑에 힌 보자기를 싸 구멍을 뚫어 안에 떡밥을 넣어 놓으면 피라미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많이 잡혔다. 저녁이면 또래들과 헤엄 처서 강 건너 갔다 오기를 했고, 어느 때는 의기투합하여 홀딱 벗은 채로 강 건너 백사장에 심은 참외, 수박서리 해다가 배불리 먹었지만, 나는 수영을 잘못해 제일 꼴지로 돌아오곤 해서 몸 달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우리 집은 마을 한 가운데 있는데 앞마당과 밖에 마당이 학교 운동장만큼 컸다. 여기서 신파극, 1년에 한번 하는 영화도 하고, 배구, 축구도 하고. 황토 흙으로 구워 만든 구슬치기. 종이로 접은 딱지치기, 생강나무로 만든 자치기, 땅뺏기, 오징어 놀이로 밥 때도 잊고 재미잇게 놀던 생각을 하면서 가보면 그 옛적 그렇게 컸던 마당이 지금은 왜 그리 왜소해 보이는지. 갑자기 초등학교 동창생 얼굴들이 떠오른다. 몽당연필 두자루 넣고 광목보자기로 감싸 질끈 동여매고 짓궂은 장난치며 학교 가던 동창들. 제일 다정하고 임의로운 사이는 초등학교 동창생들이라 70이 넘어서도 이름을 부르는 허물없는 친구들이라 잊을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산과 강으로 이루어지고 큰 평야가 있는 내 고향은 전국의 농촌 마을로서 보기 드물게 향교가 있고, 교양대학이 있는 개화된 마을로 애국심과 교육열이 강한 마을이다.

특히 이담리(鯉潭)마을은 일찍이 우리나라를 세운 단군 성전을 짓고, 단군 영정을 모시고 성역화 한 곳이며 해마다 개천절 날은 이곳에서 전국의 유명인사가 참석하여 개천절 기념식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아울러 역대 대통령 비석과 나라를 빛낸 인물 비석을 즐비하게 세워 모든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고양케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마을 주변에 댐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있다 해서 큰 걱정이 앞선다. 내 고향 마을은 500년전 순흥順興 安氏 선조님이 이곳에 터를 잡아 15代를 이어오고 있으니 댐건설로 마을이 수몰된다면 아쉬움이 이루말 할 수 없다. 나 또한 종손으로서 마을 뒷동산 선영에 6대조부터 안장安葬된 묘소가 있는데 어찌해야 하는지...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나 고향에 가면 산과 강과 들녘은 변함없이 나를 포근히 반기고 있으며 고향 분 들을 보면 왜 그리 정감이 가는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오늘도 고향산천과 더불어 지내온 자화상을 아련히 되살리면서 자연의 섭리와 시대에 순응하려고 하지만 댐 건설로 인하여 고향 마을을 아름다운 추억의 그림자로만 그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움이 저려온다.

지금 옥수수를 먹으면서, 유년시절 어두워지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풀을 태워 매운 연기로 모기를 쫓으며 할머니가 검은 솥에 맛있게 찐 감자와 옥수수를 대식구들이 먹으며 여름밤을 보낸 고운 추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작열하던 태양이 서산마루에 걸쳐있다. 오늘따라 고향에 대한 진한 향수를 느끼게 되니 자주 가보고 싶은 곳은 고향이지 싶다.

안광석

동국대학교 졸업

문학미디어 시 등단. 창작과 의식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원

청주교육대학교,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사

청주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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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