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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4.21 16:13:27
  • 최종수정2016.07.07 17:15:29
비단같이 흐르는 햇살이 눈부시다. 떨어지는 꽃잎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며 꽃잎세상을 만든다. 밝으면서 부드럽게 그리고 따뜻하게 마치 왈츠를 추듯이 돌고 돈다. 어르신 한분이 "이렇게 예쁜 세상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너무 좋다"라고 하신다. 이렇게 감정을 길게 이야기 하시는 일이 처음인 어르신이다. 나는 노인을 꼭 껴안고 어르신이 더 예쁘다고 했다. 한 숨을 길게 들이 신 어르신은 비단자락 풀리듯 어느 봄날 이야기를 회상하신다.

예전에 봄바람이 시린 날이 있었지. 4월 어느 날 남편은 소를 몰고 나가 논을 갈고 점심을 먹으로 들어왔어. 누가 찾으면 없다고 하라고 하며 윗방으로 올라갔지. 그 뒤를 따라 반장하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 서너 명이 마당에서 서서 남편이름을 불렀어. 없다고 해도 들어오는 거 봤다며 신발도 있으니 나오라 다구 쳤어. 남편은 점심도 못 먹고따라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어. 그렇게 그가 넘어간 뒷산을 바라보며 한여름을 밭고랑에 앉아 등줄기에 흐르는 땀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고, 겨울은 얼음장같이 얼어붙은 가슴을 부여안고 베개를 적시며 지냈지. 그 후로는 사월의 봄이 싫었지. 구석구석이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데, 꽃샘바람을 잡고 늘어지는 찬바람만이 내 살 속으로 파고들었지. 남편이 곱다며 입던 누비 적삼을 반닫이에서 꺼내보지도 못했어. 고우면 안 되는 날들의 연속. 햇살이 아름다우면 안 되는 날들이 흐르는 동안 뱃속의 아이는 태어났지. 내 귀여운 둘째 딸. 분신처럼 심어놓은 씨앗을 남편도 모르고 나도 몰랐지. 내 삶이 되어 버린 불쌍한 유복자. 살아보니 모든 것은 다 정해진 인연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더군. 내 인연도 그거까지였다면 유복자 딸은 남편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일곱 살이 된 큰딸을 그늘삼아 봄 햇살이 아름다운지, 여름이 무더운지. 가을이 외로운지, 겨울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삶을 살게 되었어.
그러고 보니 나는 평생을 낫을 갈며 살았던 거야. 내 남편을 데리고 나가 혼자 돌아온 반장을 향해 나는 늘 낫을 갈았거든. 그렇게 가기 싫다는 사람을 데리고 갔으면 같이 와야지. 저 혼자만 살아서 활보하는 꼴을 보면 손발이 떨렸어. 한양 조 씨 양반가에서 태어나 곱다는 소리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란 나였어. 딸 만 둘 데리고 사는 우리 집을 누구라도 허투루 대할까 나는 밤에도 낫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지. 지금 생각하니 내 외로운 팔자가 싫어 상대 없는 세상을 향해 낫을 휘두르고 살아온 꼴이 됐어.

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반장을 향한 미운 마음이라는 명분을 세웠지만 사실은 내 고단한 삶을 향해 날을 세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딸들이 출가하고도 나는 낫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 그 낫이 나를 향해 있는 것을 알 수 없었어. 날을 세우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행스러운 삶인지, 일찍이 정신 줄을 놓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지. 지금 창밖의 햇살이 찬란한 것은 낫 가는 마음을 멈춰서 일거야. 이곳에 온지도 근 15년이 되었으니 나는 평생을 낫을 가느라고 누구하고도 가까이 할 수가 없었어.

어제는 큰딸이 하루종이 내 옆에 앉았다 갔어. 예쁜 것들. 고마운 것들. 이번에 열이 오르고 몸이 많이 아팠을 때, 그만 가고 싶었어. 구십이 넘어 병원에 누워있는 어미를 잃을까 매일 찾아오는 내 딸들. 어제는 칠순이 넘은 큰딸이 먼 길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와 점심을 먹이고 바라보다 돌아갔지. 어찌 닮지 않아도 되는 팔자를 닮았을꼬. 고생하지 말라고 부자 집으로 시집보냈더니 일찍이 혼자되어 일을 소같이 하여 아이들을 키웠지. 그 모습을 바라보면 내 탓 같아딸이 밭고랑을 매면 갈퀴손으로 내 심장을 긁는 것 같았어. 그러더니 그 아들 또한 일찍이 가버리고 쌍둥이 손녀까지 거두게 되었지. 이번에 시집보낸다고 고손자 보고 가라네. 이렇게 햇살이 고울 때 가야 하는데…. 영감이 이렇게 할망구가 되어 버린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쩔꼬.

요양원에서 우리는 어르신을 '조마님'이라고 부른다. 맑은 미소를 띠고 눈웃음 짓는 반달눈은 본연의 모습이건만, 평생 낫을 갈며 살았다고는 믿기지 않는 고운 자태가 더욱 처연하다. 한 많은 인생을 반듯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살기위해 가슴에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을까. 지금은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다 날려 보내고 피안의 세상을 사시는 어르신은 진정 우리들의 어머니다. 가슴이 뭉클하여 다시 어르신을 껴안았다. 나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양승복 수필가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수강

-2회 효동문학상 대상 수상

-푸른솔문학 신인상 수상

-푸른솔문학 작가회 회원

-초정노인복지재단 요양병원 간호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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