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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초토(焦土)의 시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12

  • 웹출고시간2016.06.23 15:48:07
  • 최종수정2016.07.07 17:18:02
구상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구원 문제, 우주의 존재 의미, 현상에 대한 미의식 등 형이상학적 주제들을 주로 탐색한 시인이다. 6·25전쟁이 가져온 참혹한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발하여 현실의 깊이와 근원을 탐색했고 구도적 신앙인의 자세를 취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이고 역사적이면서 초(超)역사적이다. 그의 시 밑바닥에 생의 비극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초극(超克) 의지가 흐르는 것은 시인의 이런 세계관 때문이다.

전체 15편으로 구성된 '초토의 시' 연작은 전쟁이 낳은 무수한 주검과 인간 존재에 대한 비판적 성찰, 고통의 세계에서 구원의 세계에 이르는 과정을 견고한 시어로 형상화한 구상의 대표작이다. 초토(焦土)는 까맣게 탄 흙으로 전쟁으로 참담하게 훼손된 우리의 산하를 말한다. 생명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파괴된 비극의 땅, 폐허의 잿더미로 변한 우리의 조국을 가리킨다. 시인은 이 절망의 암흑공간을 시로 되살려내면서 기독교적 구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전쟁이 낳은 비극의 상흔을 극명하게 드러내어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형제애와 인류애를 부각시킨다.

적군의 사체가 묻힌 무덤 앞에서 시인은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낀다. 분단된 조국이 낳는 비극을 뼛속 깊이 절감한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적들의 넋을 떠올리며 시인이 느끼는 것은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 관용적 동포애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터에서 서로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누던 사이였으나 그들은 모두 형제고 동포다. 그러기에 적들의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묻은 양지바른 언덕에서 시인이 느끼는 것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감이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하늘이 닿을 것만 같은 봄날, 구름은 유유히 북으로 흘러가는데 시인의 귓가에는 아직도 포성(砲聲)이 생생히 울린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없는 비애와 고통 속에서 시인은 결국 목놓아버린다.

이 애절한 장면은 비극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의 뼈아픈 상흔이다. 죽음과 폐허를 낳은 것은 적군도 아군도 아닌 전쟁이라는 괴물인 것이다. 6·25전쟁은 남북 사이의 이데올로기, 정치적 신념 차이에서 발생했지만 이념은 모두 허상이다. 인간의 야욕이 만든 허상이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과 비극의 역사를 낳은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색깔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내재한 사랑이다. 이 광대한 사랑을 통해 인류는 비극의 역사를 초극해야 하고, 증오와 원한을 넘어서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대승적 포용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시인의 염원 또한 그러했으리라.

/함기석 시인

초토(焦土)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 구상(具常 1919~2004)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둔덕을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런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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