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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0.18 17:02:36
  • 최종수정2018.10.18 17:13:54
[충북일보] 폭염의 기세에 눌려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던 가을은 태풍의 시작과 함께 우리 곁으로 찾아 왔다.

지난 여름은 1990년대의 그 어느 해처럼 백 년 만의 폭염에 버금할 정도의 더위로 말미암아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 그 더위를 견디다 못해 가까스로 짬을 내어 다녀온 2박 3일의 경상도 황매산 자락의 산촌 여행마저 없었다면 방학 내내 집에서 긴 무더위와 씨름을 하느라 꽤나 비지땀을 흘렸을 게다

몇 해 전 여름 방학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경상도의 한 산촌 마을에 요양을 핑계 삼아 잠시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지치고 병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서였다.

그 곳은 당나귀 도사라 불리는 분이 살고 계셨다. 내가 본 최도사님의 모습은 머리는 길게 땋아서 마치 여학생처럼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무명천의 흰 한복을 즐겨 입었다. 때때로 조우관을 쓰고 당나귀를 타고 산으로 가 나무를 해서 당나귀의 등에다 싣고 돌아오시기도 했다. 제법 많은 양의 벼농사, 밭농사와 소, 돼지 또 당나귀를 키우는 일을 수행이라도 하는 듯 온 정성을 다해 열심히 기르는 분이셨다. 어찌 보면 자칭 폼생폼사가 아닌 진짜 수행자 같은 모습을 나는 종종 볼 수 있었다.

익숙하지도 않은 산골에서 지내던 어느 날, 도사님 트럭을 타고 집에서 50여리 떨어진 오일장이 열리는 읍내를 따라 나갔었다. 여기저기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바다의 신기한 물고기도 구경하고 필요한 찬거리와 집에서 신을 청보라색 고무신도 샀다. 한 식육점을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주인아주머니와 도사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주인 되는 아주머니가 "이 분은 어떤 분이세요. 예쁘신 분이 새로 오셨네요."하고 물었다.

"우리 집에 새로 온 식모에요." 하고 도사님은 대답 하셨다. 순간 나는 화가 발끈 치밀었으나 참았다. 그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하고 많은 말 중에 식모가 뭐예요? 도사님이 도가 높으면 높지 왜 사람을 무시하세요?"하며 따지듯이 말했다. 도사님은 "내가 언제 무시했는데?"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에 언성을 높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식모라고 그랬잖아요." 그랬더니 도사님 말씀은 "식모가 뭐 어쨌는데 식모가 왜 무시한다고 생각햐~ 우리 집에서 밥하고 있잖아 우리 집에서 밥하면 식모지 식모가 뭐 별 게 식모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이라는 건 식모나 사장이나 교수나 다 같이 존귀한 존재인데 왜 그것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냐."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존귀한 존재인 줄 모르니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 남을 무시하고, 갑질을 하고 그러는 거다. 직업이 곧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식모는 천하게 여기고, 교수는 대단하게 여기고 식모와 교수의 차별이 뭐가 있는데, 차별은 없는 거야. 영혼에 있어서는. 그건 한낱 직업일 뿐이여.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열등의식의 발로야. 회장님이라도 의식이 천하면 천한 사람이고. 식모라도 의식이 고귀하면 고귀한 사람이여. 그 사람의 의식에 따라 고귀하고 천한 게 있는 거지. 직업에 따라 천하고 고귀한 게 있는 건 아니라." 타이르듯이 말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 잘났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만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귀하다는 것은 남과 비교해서 고귀한 게 아니라 스스로 고귀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라는 건 스스로 존귀한 줄 알아야 어디서 무엇을 하든 당당할 수 있는 거다. 나는 비로소 내가 당당할 수 있는 존귀한 사람임을 알았차렸다 그 이후 나는 적지 않은 의식의 변화가 생겼다. 자연 치유를 위해 이 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남녀노소 빈부격차 가리지 않고 이 집에 있는 동안 식모를 자처하고 정성껏 사람들을 대접했다. 아직도 그들은 내가 해 준 그 여름의 시골 밥상을 기억한다고 종종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한 날은 내가 이집의 식모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더니 모두들 기분 좋게 웃는다.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다. 두 세 식구 밥이나 겨우 할 줄 알았던 내가 무려 열 댓명 먹을 밥상을 거뜬히 차려 낼 정도가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되도록이면 말도 부드럽게 좋게 하고 유머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강하지 않은 어투로 말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어울렁 더울렁 살며 배워 온 많은 삶의 지혜를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식모가 나에게 준 의식의 변화인 셈이다.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엔 밭에 나가 호박과 호박잎, 가지, 오이를 따서 밥을 지어 자연 밥상을 먹음직스럽게 차려냈던 일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김은수

간호학 석사

대학병원 수간호사, 중소 병원 간호과장. 간호 부장 역임

자연 치유사.

현, 충북대학교 간호학과 근무

충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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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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