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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공중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8.12.20 17:14:03
  • 최종수정2018.12.20 17:14:03

공중 - 송재학(宋在學 1955~ )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라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뒷목과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새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겠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사낙안의 발묵이 번진다 짐작하자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게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一家)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이 비워지면서 허공을 실천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라 곤줄박이의 개체수이다 새점을 배워야겠다
[충북일보] 송재학은 감각주의자다. 만물의 존재와 근원에 대해 번민하고 바깥세계를 몸의 감각으로 육화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풍경의 정지보다 풍경의 운동성, 철학적 진술보다 감각적 색채 이미지가 우세하다. 이 이미지들이 고뇌와 절망과 사색을 동반된다. 그의 시에는 현실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자아, 아버지를 둘러싼 가족들에 대한 절망, 물적 세계를 넘어서려는 정신적 탈속 욕망이 나타난다. 탈속의 욕망은 대상에 대한 집착 또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해탈 심리이자 절망의 심연에서 벗어나 정신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무의식이다,

흥미로운 건 이 탈속 욕망이 푸른 물결 이미지, 푸른빛과의 싸움으로 나타나곤 한다는 점이다. 절망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 이미지에는 타락한 싸움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시인의 본능과 저항이 실려 있다. 즉 그에게 푸른빛은 병들고 굶주린 이 세계를 해탈로 이끌 화엄의 빛인 셈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죽음이 담보된 과정이기에 푸른빛은 죽음의 빛이기도 하다. 그럼 시인은 왜 빛과의 싸움을 지속하는가· 도대체 세계는 어떤 곳이기에 회색, 갈색, 푸른색, 흰색, 검은색 등 색채에 대해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에게 세계는 근원을 상실한 곳이며 모든 풍경들이 동시에 편재하는 복수성의 장소다. 시인의 육체에 흡수되어 재해석되고 재탄생되길 기다리는 불투명한 공간이다. 그의 시 곳곳에 경계의 해체, 탈영토화의 상상력, 투명한 이미지의 구현 욕구가 나타나는 것은 시인의 이런 세계인식 때문이다. 시의 문장들이 하나의 중심을 향해 구심력의 집중을 보이지 않고 원심력을 발산하며 길게 산문화되어 병렬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에게 세계는 다색(多色)의 세계, 다성(多聲)의 세계, 복수(複數)의 세계다. 그는 세계의 무수한 풍경들, 그것의 색채와 소리를 감각하여 세계의 깊이에 다다른다. 세계를 바깥에서 몸 안으로 이주시키는 이 감각화 과정에서 풍경들이 간직한 소리와 빛과 색이 나열된다. 특히 색은 세계의 본질과 실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푸른빛이 바깥 세계를 대표하는 색채기표라면,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시인의 몸을 대리하는 존재기표다. 세상의 풍경이 명(明)이라면 인간의 심연은 암(暗)이다. 검은색은 밖의 모든 것을 흡수하여 아무것도 내뱉지 않는 시인의 몸의 색, 즉 무색이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허(虛)하고 공(空)하여 시인과 공중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모든 소리들이 일가(一家)들 이루어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는 공중은 곧 우리의 몸이자 마음이다.

이처럼 시인은 바깥 세계를 몸으로 흡수하여 일체화시키는 서정적 합일의 세계를 희원한다. 그는 자신의 시를 '수많은 풍경과 내 몸의 연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의미 이전에 감각으로, 메시지 이전에 이미지로 세상과 접촉하고 교감하고 연대하겠다는 발언이다. 이런 풍경의 내면화는 초기 대표작 「소래 바다는」에도 잘 드러나 있다. 세 번째 시집 『푸른빛과 싸우다』(1994)에 수록된 작품으로 소래 바다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생을 현재적 풍경으로 감각화한 공간이다. 아버지는 육친으로서의 아버지이면서 시인 자산의 아픈 삶이 전이되고 투영된 감각의 대상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래 포구의/ 난전에서 본다, 벌써 귀밑이 희끗한/ 늙은 사람과 젊은 새댁이 지나간다/ 아버지는 서른여덟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난날/ 장사를 하느라 홍해와 일광을 돌아다니며 얻은/ 병이라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소래에 오고 싶어하셨다/ 아니 소래의 두꺼운 시간과 마주한 뻘과 협궤 쪽에 기대어 산/ 새치 많던 아버지, 바닷물이 밀려나가는/ 일몰 끝에서 그이는 젊은 여자가 따르는/ 소주를 마신다, 그이의 손이 은밀히 보듬는/ 그 여자의 배추 살결이/ 소래 바다에 떠밀린다/ 내 낡은 구두 뒤축을 떠받치는 협궤 너머/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산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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