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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학살 1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8.05.10 17:33:14
  • 최종수정2018.06.07 10:27:24
[충북일보] 김남주의 시에는 울부짖음과 비탄, 피 끓는 분노가 서려 있다. 그에게 시는 삶이 흘린 혹독한 피였고 목숨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는 시를 통해 독재지배의 폭압과 허위를 신랄하게 폭로했고, 비인간적인 노동과 착취 속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뼈아픈 삶을 격정적으로 담아냈다. 그렇게 그는 목숨을 걸고 시대의 불의에 맞선 투쟁가였다. 암흑의 공포 속에서 끝없이 빛과 진실을 되찾으려 했던 행동가였다. 그에게 시인이란 책상머리에 앉아 유려한 문장을 조탁하는 자가 아니라 민중들이 불의와 폭력에 맞서 싸우도록 그들의 가슴에 둥둥 북을 울리는 자였고, 전투의 시작 나팔을 울리는 선봉자였고, 살인과 고문을 자행하는 압제자의 가슴에 창을 꽂는 전사였다.

1980년대 김남주의 시 정신은 1960년대의 신동엽과 김수영, 1970년대 김지하의 저항정신을 승계한다. 그러나 시의 숨결과 리듬, 격정과 기백이 다르고 감정 노출 방식과 비판의 기법 또한 다르다. 「학살」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자행한 참혹한 진압과정을 극사실적으로 재구성한 그의 대표작이다. 압축된 문장의 속도감 높은 전개, 점층적 반복과 극도의 긴장감 조성으로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을 매우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극한의 공포에 휩싸인 채 울부짖는 무고한 시민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하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당시 신군부의 행동을 시민학살로 규정하면서 그 역사적 비극현장을 중개한다. 게르니카의 학살보다 더 처참한 광주의 학살이 악마의 어떤 음모보다도 계획적이었고 조직적이었음을 고발한다. 이를 위해 시인은 시공간을 혼용한다. 공간은 1980년 광주를 그대로 재현했지만, 시간은 밤 12시로 응축하여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학살의 만행을 극대화한다.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는 도망치는 사람들, 이미 죽어 널브러진 사람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사체들 등등.

5.18은 우리 현대사의 크나큰 상처고 비극이다. 김남주는 이 역사의 현장을 우회의 서사가 아닌 정공법의 시로 직파한다. 김남주의 시를 접하면서 많은 독자들이 놓치는 안타까운 점이 한 가지 있다. 핏발선 분노 이면에 아이의 눈빛 닮은 애잔한 서정, 세상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려는 순박한 사랑, 버려진 작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뿌리 깊게 숨어 있다는 점이다.

5월이다. 녹음으로 우겨진 산과 들, 하늘의 구름도 산천의 꽃들도 다시 5월이다.

/ 함기석 시인

학살 1 - 김남주(金南柱 1946∼1994)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는 못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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