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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8.16 17:42:15
  • 최종수정2018.08.16 17:42:15
[충북일보] 비행기의 작은 덧창을 올렸다. 푸른 산과 들에 가르마 같은 길은 언제 봐도 정답다. 크고 작은 마을과 그 옆으로 흐르는 강은 또 얼마나 아기자기하던지. 조금 더 오르니 몽실몽실 구름 밭이 펼쳐진다. 구름과 바람, 그리고 태양이 만들어내는 하늘의 신비에 정신이 몽롱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가 밑그림이 되어주는 자연 그대로의 제주에 흠뻑 취해보고 싶다.

에코랜드 테마파크 기관차로 30만 평의 한라산 원시림 탐방에 들어갔다. 일명 곶자왈 지역이다. 제주의 허파와 같다는 곶자왈은, 수풀을 뜻하는 '곶'과 돌과 자갈들이 모인 곳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산송이라는 특이한 자갈과 바위가 널려 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으로 산소 함량이 많고 보온·보습 효과가 뛰어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하여 북방계와 남방계의 다양한 식물이 공존한다는 설명이다.

검은 현무암 사이사이에서 자라는 각종 나무와 낯선 풀들이 신기하다. 무엇보다 현무암을 꽉 끌어안고 있는 나무뿌리와 덩굴들은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서로 부등켜안고 있었으면 나무뿌리가 덩굴이 돌속으로 파고들었을까. 이 기이한 모양은 자연 그대로의 제주 모습이라 여겨진다. 나무 그림자 드리운 호수는 얼마나 예쁘던지 풍덩 뛰어들고 싶다. 나는 아예 열차에서 내렸다. 크게 심호흡을 하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빨려드는 듯한 이 강렬한 기운은 무엇일까. 숲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일까. 내가 숲을 빠는 것일까. 원시의 냄새, 원시의 빛깔, 원시의 순간에 맞닥뜨린 느낌이다. 어떤 간섭도 끼어들지 못하는 가공할 순간이 지나자 더듬더듬 길을 찾았다. 숲길인가 하면 바윗길이고 바윗길인가 하면 억새 길이다. 이 길엔 4.3항쟁 당시에 석축과 참호, 등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제주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명소 중의 명소 주상절리 앞에 섰다.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하며 흘러내린 용암이 냉각 응고하면서 수직으로 쪼개진 돌기둥인데 다각형 특히 육각형의 검은 돌기둥들이 정교하게 쫙 들어선 모습은 자연의 신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검은색 현무암이 철썩이는 파도에 부딪히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황홀경을 불러온다. 여기 현무암 옹벽에 제주 고씨인 내 마음 한 자락 걸어둔다.

용눈이오름 앞에 서자 숨이 멎을 것 같다. 어쩌면 선이 저토록 부드럽고 구김살이 없을까. 오름에서 풀을 뜯는 소들 등의 곡선도 오름처럼 완만하다. 풀이며 흙도 여인의 속살처럼 포근하고 매혹적이다. 그 부드러운 속살로 선을 이루니 매끄럽고 고혹적으로 보일 밖에. 어떤 사진작가는 용눈이 오름의 부드러운 선과 풍만한 볼륨에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고백했다더니. 나도 그 관능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나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은 분화구를 돌아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로 내 달린다.

오름은 화산의 산록부에 형성된 작은 화산이라고 해서 기생화산이라 부른다기에 당연히 울퉁불퉁 굴곡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가히 예술이다. 이 풍경 속에서 누가 전쟁을 이야기하고 폭력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모습 어디에 음모가 있고 반목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바람이 누인 풀 위에 앉아 제주의 흙을 한 움큼 받쳐 들었다. 제주에 가면 꼭 만져보리라 별렀던 흙이다. 이 검고 보실 부실한 흙이 TV에서 보았던 그 흙이란 말인가. 판문점에서(2018. 4. 27.), 백두산 흙과 한라산 흙이 만나고 한강 물과 대동강물이 그 위에 뿌려지며 하나가 되는 역사적인 장면, 그 장면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 내 속에서 회오리치며 되살아난다. 이제는 그리운 백두산 흙을 만져볼 차례다. 아직은 성급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아름다운 우리 강산, 잃었던 산하를 다시 찾은 느낌이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어찌 그리 오랜 세월 동안 반목하고 질시했단 말인가. 고향이 그리워 가슴앓이 하시던 내 부모님은 이북5도민 묘지, 동화경모공원에 누우셨으니 이 허탈함을 어이할꼬.

여기 한라산 아랫동네에서 비행기에 앉은 채 금강산, 백두산까지 날아가고 싶다. 꿈에 그리던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백두산 천지가 클로즈업되어온다. 말로만 듣던 내 고향 산천이 가슴을 열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안기리라. 우리 땅을 원 없이 밟으며 아름다운 우리 강산에 만취해 보리라.

고영옥

푸른솔문학등단 푸른솔작가회, 기독교문이회원

도화구연강사. 정은문학상수상

저서 <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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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