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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유리창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28

  • 웹출고시간2017.03.30 16:58:07
  • 최종수정2017.03.30 16:58:07
김구용은 동양사상과 서구의 모더니즘을 혼합하여 독자적이고 파격적인 시세계를 개척한 시인이다. 그의 시를 논할 때 늘 따라다니는 지적이 난해성이다. 김구용 시가 난해한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추상명사와 한자어가 많이 사용되고 은유로 표현된다는 점, 둘째 전통서정시 양식을 지양하고 모더니즘의 형식과 발화를 취한다는 점, 셋째 이미지들이 복잡성을 띠며 비논리적으로 연결된다는 점, 넷째 결론부터 던져놓고 시가 출발되어 일반적 사고수순을 전복시킨다는 점, 다섯째 사유의 바탕에 불교와 노장 등 어려운 동양사상이 깔린다는 점, 여섯째 시의 분량이 길고 호흡이 숨차다는 점 등이다.

'유리창'은 비교적 난해하지 않은 시다. 1950년 6·25전쟁의 상흔(傷痕)을 암울한 색채로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이 커튼을 걷자 유리창 밖으로 도시가 나타난다. 공습전투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검은 배를 드러내며 지나간다. 시인은 지금 유리창 안에서 유리창 밖의 풍경, 전투기들에 의해 폭격당하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포탄이 떨어져 도시는 쑥대밭이 되고 대공포는 계속 불을 뿜는다. 폭격 속에서 무너지는 건물들, 비명을 지르며 골목을 달리는 사람들,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모습들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유리창-김구용(金丘庸 1922~2001)

커튼을 떨리는 손으로 걷는다. 도시가 들어찬 유리창에 전투기는 검은 배를 노박 드러내며 넘어간다. 안개를 흔드는 저승의 아우성 소리, 망령亡靈처럼 선 고층들은 소스라쳐 놀라 눈마다 불을 껐다. 그도 불을 죽였다. 창이 먼 포砲 소리에 떨린다. 마음속까지 진동한다. 닿으면 불이 활활 당길 듯 해는 뱅그르르 돌며 첨탑으로 멀어진다. 사람들은 행길마다 골목마다 집집마다 어쩔 줄을 몰라 들끓는다. 라디오는 이십 세기의 비극을 고한다. 그는 미래의 위치에 서서 빛도 냄새도 소리도 맛도 없는 유리창을 내다본다. 비가 두 눈에서 내린다.

밤이 내린다. 얼굴은 액연額椽 속의 나라 없는 백성, 비가 죽죽 흘러내릴 때마다 유리창 안의 그는 계속 무너진다. 바깥도 어둠에 가려 쓰러진다. 포 소리가 연신 날아온다. 백골들이 유리창에 늘어선다.
전투기소리, 대공포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저승의 아우성 소리'다. 그런데 이 끔찍한 공포의 장면들은 시인의 상상이나 환상이 아니라 시인이 체험한 6.25전쟁의 생생한 기억이다. 무자비한 파괴와 학살이 자행되는 현장을 목격하며 시인의 가슴은 갈가리 찢어졌을 것이다. 전쟁의 현장 그리고 미래의 위치에 서 있는 시인에게 20세기는 전쟁과 살인의 시대, 광기와 도륙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 이 비극의 세기와 함께 무너지는 도시와 함께 시인도 무너진다. 유리창 밖의 세계와 유리창 안의 세계가 동시에 무너진다. 결국 살아남은 자는 어디에도 없고 전쟁이 파괴한 도시엔 온통 백골들뿐이다.

여기서 주목해할 것이 현실과 초현실의 관계다. 현실의 참혹한 파괴와 죽음의 공포가 시인으로 하여금 초현실적 이미지를 낳게 했다는 사실이다. 즉 김구용 시에 나타나는 초현실적 이미지는 현실도피 욕망의 자폐적 산물이 아니라 전쟁의 고통이 낳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파편들이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20세기의 비극과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김구용의 난해한 시작(詩作)은 귀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시인이 유리창을 통해 진정으로 보고 싶었던 것은 비극의 도시가 아니라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의 아름다운 들길이었을 것이다. 꽃들 사이로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와 낙엽 깔린 가을날의 고요였을 것이다. 그럴 때 시인에게 유리창은 한없이 맑고 투명한 존재,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이런 시인의 마음이 투영된 작품이 아래의 '나는 유리창을 나라고 생각한다'라는 시다. 이 시에서 유리창은 시인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분리할 수 없는 동일한 존재다.

나는 이 유리창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계절마다 가지가지로 변하는 벽화는 없을 것이다. 전등을 죽여도 해와 달과 별들이 창에 끓어올라 심심하지 않다. 당신이 날씨를 살피며 기다리던 사람이 오후의 길을 오는 것이 보이는 나는 이 유리창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러한 생각을 하느뇨. 암만하여도 나는 그 순수한 투명이 좋은가 보다. 아지랑이를 따라 꽃에서 꽃으로 날으는 나비의 기쁨도, 책상 너머 바깥에서 오랫동안 더위를 씻어주던 녹음綠陰이 낙엽지는 고요도, 잘 익은 과실나무 아래서 생각하던 사람이 부르는 목소리도, 다 그대로 전하여 주는 나는 이 유리창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둠을 차별하지 않기에 한 쌍의 제비가 단꿈 꾸는 그믐밤도 미워하지 않는다. 이 유리창과 나를 분리할 수는 없다. 눈보라 칠 때 유리는 추위가 방안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건만 방안의 나는 젊은 소경이 피리를 삐이삐이 불며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듣는 나를 슬퍼한다. 그러나 유리창이 맑음을 잃고 추위에 복잡한 꽃무늬로 동결凍結한 모양이 내 아름다운 슬픔의 형상임을 보기도 한다.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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