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대학 다닐 때 떡을 팔던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떡을 팔고 다닌다면 할머니는 분명히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실패자이다. 떡 팔아 빌딩 몇 개 샀다는 소문은 떠돌아다니는 말일 뿐이다. 평생 동안 견뎌왔던 고된 노동의 가치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
이렇듯 평이하게 진행되던 스토리는 13행과 14행에서 대전환이 온다. 갑자기 복수형 조사 '들'이 붙는다. 이는 시인의 시선이 이야기 밖의 사회로 옮겨진다는 의미이다. 이야기속의 인물은 이야기를 둘러싼 사회의 그 어떤 계층을 대표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가장 큰 특성이다. 그렇다면 생계형 떡장수가 아니라 생계형 떡장수들이다. 여전히 밖으로 내몰리는 생계형 떡장수의 자식이 아니라, 여전히 밖으로 내몰리는 생계형 떡장수들의 자식들이다.
시인은 생계형 인생이 대물림되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냐고 강력히 항변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현란하게 바뀌어도 적빈(赤貧)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사회의 벽. 그 벽은 너무도 높아 지구 몇 바퀴 돌 만큼 걸어도 넘을 수 없다. 그 벽은 달처럼 너무도 먼 데 있어 바라보기만 할 뿐 도달할 수 없다.
시인은 이토록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신조어를 만든다. 달과 함지의 합성어 '달함지'가 그것인데, 그 이미지가 독창적이어서 달빛에 베일 듯 가슴이 아프다.
/ 권희돈 시인
달함지 / 이종수(1966 - )
아직도 떡 팔고 있다
김밥말이 인절미 절편 튀김 담긴 고무대야를 내려놓으며
떨이 떡이니 팔아 달란다
아니 할머니가 다 되어 등장할 대목이 아닌대
누가 쓴 쪽대본일까
떡 팔아 빌딩 몇 개는 샀다는
소문은 믿을 게 못되는 줄 알면서도
괜히 믿고 싶어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르내렸던 언덕길만 해도 지구 몇 바퀴는 되었을 텐데
간간히 오리배 타는 유원지에도 나타나곤 했던
신출귀몰한 떡들은 왜 아직도 생계형 떡으로 달라붙어 있을까
아직도 밖으로 내모는 떡의 자식들
돈 없어 못 사먹던 그때나 있어도 안 먹는 지금이나
떡은 마천루를 짓고도 남을 이문 없는 일이거나
늘 꼭대기나 벼랑에 부리고 돌아가는
저것을 달함지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