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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 웹출고시간2015.06.18 16:25:51
  • 최종수정2015.06.18 16:25:51
내가 경영하는 약국 컴퓨터에 수록된 환자 중에는 백 살 이상 고령자도 여러 명 있다. 백 세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이들 중 약국을 종종 방문하는 백 세가 된 정씨 할머니가 계신다. 14년 전 약국을 개업할 때부터 들르던 성품이 조용한 분이다. 처방전 없이 파는 일반약을 가끔 사가긴 했어도, 평균 잡아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약을 지어 간 기록으로 보아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건강한 체질이다. 약국 방문이 드문 데다 말 없는 분이라 기억에 남는 일이 별로 없고, 따라서 전에 할머니 모습을 정확히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요즈음 새삼 약국 안팎에서 할머니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쩌다 밖을 보면 보행보조기를 끌고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이 탓에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 의지하여 허리를 펴고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든 보행보조기에 의존한다. 정 할머니는 걸어가다가 힘이 들면 길가나 약국 앞 계단에 앉아서 쉰다. 이런 걸 보면 아직도 백 세라는 나이는 넘기 어려운 험한 산봉우리 같기도 하다. 약국에는 주로 변비약이나 소화제, 관장약을 사러 방문한다. "똥을 못 누겠다, 와 이리 안 죽어지노. 어서 죽어야 할 낀데······." 약국에 와서 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늘 하는 말이다. 나이 들면서 대장 기능이 무력해진 데다 식사량이 적어 변비가 왔지 싶다. 배변이 시원치 않은 데다 한 몸 가누지 못하는 괴로움까지 더해 생에 대한 체념이 얼굴에 잔뜩 묻어있다. 나이가 웃음을 앗아갔다.

내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 한동안 몸이 좋지 않을 때, 육식만 하면 변비가 생겨서 아내가 대변을 손으로 파내던 생각이 난다. 채식하지 않고 육식을 했다고 어머니를 책망하던 이 못난 자식이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요즈음은 가끔 변비로 고생하면서 말이다. 옛말에 잘 먹고 똥 잘 싸면 무병장수 한다 하지 않던가. 괜한 말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변비만큼 야속하고 고통스러움이 적지 않다. 노인들은 변비로 인하여 변을 보다 힘을 주다가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질 수도 있다. 젊은 사람도 매한가지며 잘못하다가는 항문이 찌어지면 치질을 유발하게도 된다.

정 할머니가 불편한 걸음걸이로 몸소 약을 사러 오고 의료급여 1종으로 지정된 걸 보면 돌보아주는 자식이나 손자, 손녀가 없는 것도 같다. 그러면 관장약을 사다가 거동도 불편한 분이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할머니 모습이 훗날 우리의 자화상 같아서 도와드릴 방법을 찾으려 가족의 안부를 물으려 해도 청력이 좋지 않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은 숙제로 남겨두고 있다. 세월이 삭막한 세상 탓인지 가족까지도 노인을 외면한다. 나중에 자기도 나이 들어 서러워지면 옛날 일이 생각날까.

생로병사는 만고의 진리다. 돈이 많거나 세상을 호령했던 권력자도 이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생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며 모두 멋있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노인들이 병원을 쇼핑하는 새로운 풍속도 생겼다. 어쨌든 이런 소망이 인간의 평균 수명을 올리는 데는 한몫했고, 제약회사는 오늘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약의 발명을 위하여 실험실 불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는 이전의 자본주의보다 빈부 격차를 더 벌려 놓았고, 사회적 안전망이나 복지보다는 개인의 이기심을 심화시켰는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할머니처럼 고령인데도 돌보는 가족이 없고 사회적 구제 조치가 미흡한 것도 이런 풍조와 무관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 노라'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장을 튼튼하게 운동을 해야 변비도 줄일 수 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채식을 통해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하면 변비를 줄일 수 있다. 약은 일시 뿐이다. 백세시대를 겨냥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변을 시원하게 보는 사람은 병이 찾아오지 않는다. 노인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어렸을 적 국어 교과서에서 늘 읽고 외우던 이 시조는 우리 가슴속에 새겨지지 못하고 책에만 존재했던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이며, 인간과 동물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정의륙 작가

- 푸른솔문학신인상. 푸른솔문학작가 회원. 부산수필문학회 회원

- 정은문학상 수상

- 저서: <감동이 있는 세상을 그리며>

- 공저: <심연에 자리한 이름> <반딧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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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