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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1.28 17:56:01
  • 최종수정2016.01.28 17:57:12
읍내 회색빛 건물처럼 아련한 아버지. 지나는 길손에게는 따뜻했지만 자식에게는 무관심했던 아버지. 그럼에도 외출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흰 두루마기자락의 한기를 확인하고서야 잠들었던 어린 시절. 나와는 다르게 시인은 성탄제에 버금가는 구원의 아버지로 추억한다.

어두운 방 안에 빨갛게 피는 숯불, 숯불만큼 열이 오른 어린 것, 어머니는 아니 계시고, 목숨이 잦아드는 손자를 애처로이 지켜보는 할머니. 어린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는 눈길을 헤치고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 가지고 오셨던 것. 아직도 뒷문엔 눈발 내리는 소리 들리는데,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 오른 볼을 마구 부비는 한 마리 짐생 같은 어린 아들. 그날 밤이 그 가족에겐 성탄제였다고 시인은 회상한다.

흰 눈 속의 붉은 산수유는 아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랑의 묘약이었지만, 그 붉음의 이미지는 성탄제와 오버랩되면서 인류를 구원하는 피의 이미지로 확산된다. 붉은 산수유의 사건이 시인 가족의 역사를 새로 써 냈음을 상징하듯이, 성탄절에 현란하게 꾸미는 장식품의 붉음은 인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온 사건을 상징하는 이미지이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 어른이 훨씬 지난 뒤에야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깨우치고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으나 때를 놓치고 말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어머니도 어머니이지만, 정말 전지전능한 우주의 주재자 있어 단 하루만 아버지를 이승에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권희돈 시인

성탄제(聖誕祭) / 김종길(1926 - )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都市)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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