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초기 시의 기본 축은 시적 자아와 아버지 사이의 불화다. 아버지는 가족제도 속의 가장(家長) 이상의 의미를 띠는 상징적 존재, 폭력적 현실을 조장하고 탄생시키는 핵심 권력주체로 등장한다. 이런 아버지의 그늘에서 시적 자아는 심각한 상처를 받거나 거칠게 맞선다. 전자의 경우 고통과 상처 속에서 극심한 공포를 겪기 때문에 시적 자아는 몽상적 꿈의 세계나 초현실의 세계로 빠져들고, 후자의 경우 시적 자아는 아버지를 향해 비속어나 욕설을 내뱉으며 거세게 저항한다. 이성복의 초기 시에 초현실의 이미지, 욕설과 반항의 언술이 병존하는 것은 시적 자아의 이중적 배경 때문이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에서 시인은 당대를 파시즘의 세계, 병적 마취의 세계로 인식한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무감각과 무통의 시대로 인식한다. 이런 현실인식이 고통의 병렬을 낳는다. 사적 진술과 공적 진술이 교차 병렬되면서 당대 사회의 마취된 실상을 아이러니컬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시행들의 불규칙 분절과 의도적 리듬 파괴는 독재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발하는 저항의식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서정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김현이 이성복의 초기 시세계를 '따듯한 비관주의 세계'로 명시한 것은 비극의 장면들 이면에 숨은 서정의 순수와 온기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장 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에서 핵심 키워드는 '정든 유곽'이다. 시인에게 유곽은 성장의 아픔과 좌절을 뼈아프게 각인시킨 기억 공간이자, 부재와 불안을 환기시키는 상징적 현실 공간이다. 위의 시 『그날』 또한 이런 유곽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시인에게 현실은 삶의 희망과 낙관이 거세된 불임의 폐쇄공간에 가깝다.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은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장면과 집 허무는 상처투성이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장면은 당대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반영한다. 초현실적 이미지가 현실의 극한적 고통과 좌절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시인의 역설적 발언이 무겁고 깊다. 위의 시를 통해 드러나듯
그날 - 이성복(李晟馥, 1952~ )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은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