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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뼈아픈 후회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8.10.04 15:46:34
  • 최종수정2018.10.04 15:46:34
[충북일보] 황지우는 전위적 아방가르드 미학을 추구하여 1970∼80년대의 폭압적 정치현실을 통렬히 비판한 시인이다. 폭력적 사회구조 속에서 유통되는 언어는 억압의 상징물이기에 그는 당대의 언어를 파괴하여 지배체제를 부정하고자 했다. 통념에 길들여진 독자의 의식에 낯선 충격을 줌으로써 폭압의 현실을 비판적 눈으로 바라보라고 촉구했다. 즉 그에게 현실은 감시와 살육이 자행되는 어둡고 절망적인 곳이었고 이런 현실인식이 해체적 형식 파괴를 낳았던 것이다. 과감한 콜라주와 몽타주, 풍자성 짙은 패러디, 다큐멘터리 형식, 활자의 시각적 배치 등은 자동화된 일상과 무감각해진 의식에 충격을 가하기 위한 의도된 미학 장치들이다. 당시의 심정을 시인은 이렇게 밝힌바 있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건 바로 우리 사회 때문이었다. 80년 5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지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낸 것은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 모진 지옥에서 한 계절을 보내면서 증오의 힘으로 시를 썼다.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될 것 같았던 것이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그는 한동안 어둠 속에서 방황과 표류의 시간을 보낸다. 어두운 선(禪)의 세계, 우울한 상실감과 공포가 지배하는 광증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하여 세계 변혁을 기획하던 시인의 좌절된 꿈, 찢긴 마음, 뼈아픈 후회, 분열적 환각 등이 시 전면에 산포된다. 이런 갈등과 번민이 응집된 시집이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1998)이다. 이 시집은 당대의 객관적 삶과 그 시공간 속을 살아가는 시인의 주관적 삶이 겹으로 혼재된 정념의 텍스트, '유사-광증'의 실험장이다.

「뼈아픈 후회」는 이 시집에 수록된 시로 슬픔과 후회, 자책과 번민, 짙은 우수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사막화된 세계를 극렬히 부정하면서도 가슴 깊이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애증을 낳고, 결코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 시인의 시선을 육체의 내부로 이끌어 착란을 낳고 처절한 몸부림을 낳는다.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라는 내면적 절규의 언어로 시인은 다시 밖과 만난다. 안에서 더 깊은 안으로 침잠하여 세계와 역설적으로 마주한다. 사막의 세계에서 육체 내부가 모래로 가득 차 출렁거리는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세계를 관(觀)하고 자아를 선(禪)하는 항체(抗體) 행위, 그것이 그에게는 목숨이고 사랑이고 시다.

/ 함기석 시인

뼈아픈 후회 - 황지우((黃芝雨 1952∼ )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을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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