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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동두천 4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52

  • 웹출고시간2018.05.24 17:28:58
  • 최종수정2018.06.07 10:26:39
[충북일보] 김명인의 시는 기억의 흑백사진이고 눈물의 판화다. 짙은 슬픔과 상실감이 시의 바닥에 진흙처럼 깔려 있다. 그의 시에는 삶의 변방을 떠도는 자들, 목적지를 잃고 떠도는 상처투성이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표류하는 곳은 주로 비애의 공간이다. 거기서 살과 살이 끌어안고 아파하면서 흐르고 흐르면서 부서진다. 그것이 물과 모래 이미지로 나타난다. 물이라는 액체와 모래라는 고체, 즉 생명과 죽음이 혼색되어 나타난다.

기억을 재생할 때 시인은 관념으로 제시하지 않고 사건을 낳은 공간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사한다. 주관적 감정 배출을 줄이고 말들이 서정적 사색의 결을 살려내도록 돕는다. 이 말의 직조 과정에 삶의 우물 바닥을 꿰뚫어보는 직관적 통찰이 스민다. 사람살이의 비애와 분노, 허망과 눈물이 스민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그의 시는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진 아픈 사람들, 그들 가슴 속의 상처 난 길을 찾아나서는 쓸쓸한 시간여행이다.

초기 시에는 실존의 절규와 세상에 대한 비판이 공존한다.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구심력과 바깥세상으로 나가려는 원심력이 충돌하며 길항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시를 못마땅해 한다.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감화력과 절실함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반성을 계기로 그는 좀 더 간절하고 내밀한 자기고백을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작품이 첫 시집에 수록된 '동두천' 연작이다.

당시 동두천은 미군과 양공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의 울음이 메아리치던 곳이다. 돈 많은 아메리카에서 태어나지 못한 혼혈아들에게 외로움과 배고픔을 주는 곳, 춥고 시린 삶이 가득한 상처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났던 혼혈아들의 눈물과 설움을 시로 풀어낸다. 시 '동두천'에 관해 그는 말한다.

"한 삶이 갖는 고유성은 간절히 희구하고 진정으로 애쓰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룩되는 게 아니겠는가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마 이 시도 그런 것일 겁니다. 저는 제 시로나마 제가 간절히 원했던 것,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세계를 담고자 애썼습니다."

김명인의 시는 결핍과 상처, 울분과 연민이 사슬처럼 이어져 있다. 개인의 고통에서 출발하여 사회 전반으로 시의 파장이 확장된다. 개인의 불우한 가족사와 민족의 불우한 정치현실이 맞물려 시대의 아픔을 낳는다. <동두천>을 비롯하여 초기의 대표작들인 '켄터키의 집', '베트남', '아우시비쯔', '영동행각嶺東行脚', '머나먼 곳 스와니' 등에는 이런 특질이 잘 드러나 있다.

/ 함기석 시인

동두천 4 - 김명인(金明仁 1946~ )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姓을 받아 비로소 李가든가 金가든가

朴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가 길을 때린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詩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이 强辯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리 없는 합중국이고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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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