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번의 시는 크게 보아 죽음과 생명 사이, 타락과 순수 사이,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발아한다.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시, 현실을 비틀어서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추구하는 장난기 넘치는 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근원을 탐색하는 시들은 주로 생명의 탄생과 죽음,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감, 사랑의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내적 갈망의 뿌리에 어머니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육친의 대상을 넘어서서 생명의 토대이자 발원지라는 상징적 의미에서의 어머니, 즉 그의 시의 발아 탯줄이자 성장의 자궁이다. 그에게 어머니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처소이자, 자연의 생명적 근원지인 셈이다.
그가 모국어의 질감과 날것의 육감을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모성지향 의식이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모성의 언어를 통해 그는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고 삶과 죽음을 사색한다. 이런 시선 때문에 죽음에 대한 사색은 미움과 눈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인간의 본능과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육체적 관능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에 대한 모성적 관심이 여성성 나아가 인간의 육체성 전체로 확장된다.
시인의 말대로 인간은 누구나 "파도에 휩쓸리는 갸울은 목숨" 아닐까. 세모에 링거를 꼽고 병실에 누워 있었을 화자(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죽음과 생명 사이를,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갔을 시인의 불안한 눈동자가 떠오른다. 어둠의 시간이 지나고 어둠 속에서 터오는 한 줄기 관능의 빛을 통해 그는 자신이 꿈꾸던 순수한 사랑, 생명의 신비를 살려내려 했을 것이다. 죽음과 관능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에서, 아픈 육체에서 싹트는 관능의 촉은 결국 사랑의 근원에 가 닿으려는 시인의 애절한 몸짓일 것이다.
/ 함기석 시인
죽음에 관하여 - 오탁번(吳鐸藩 1943~ )
왼쪽 머리가
씀벅씀벅 쏙독새 울음을 울고
두통은 파도보다 높았다
나뭇가지 휘도록 눈이 내린 세모에
쉰아홉 고개를 넘다가 나는 넘어졌다
하루에 링거 주사 세 대씩 맞고
설날 아침엔 병실에서 떡국을 먹었다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가
첩자처럼 병실을 드나들었다
수술 받다가 내가 죽으면
눈물 흘기는 사람 참 많을까
나를 미워하던 사람도
비로소 저를 미워할까
나는 새벽마다 눈물지었다
2
두통이 가신 어느 날
예쁜 간호사가 링거 주사 갈아주면서
따듯한 손으로 내 팔뚝을 만지자
바지 속에서 문뜩 일어서는 뿌리!
나는 남몰래 슬프고 황홀했다
다시 태어난 남자가 된 듯
면도를 말끔히 하고
환자복 바지를 새로 달라고 했다
-바다 하나 주세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했다
-바다 하나요
바지바지 말해도 바다바다가 되었다
언어 기능을 맡은 왼쪽 뇌신경에
순식간에 오류가 일어나서
환자복 바지가
푸른 바다로 변해 버렸다
아아 나는 파도에 휩쓸리는
갸울은 목숨이었다